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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端宗)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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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異名)이홍위(李弘暐)
생년1441(세종 23)
졸년1457(세조 3)
시대조선전기
본관전주(全州)
활동분야왕실 > 왕
현덕왕후(顯德王后)
정순왕후(定順王后)
처부송현수(宋玹壽)

[상세내용]

단종(端宗)
1441년(세종 23)∼1457년(세조 3). 조선 제6대왕. 재위 1453년∼1455년. 본관은 전주(全州). 이름은 이홍위(李弘暐).

부친은 문종이며, 모친은 현덕왕후(顯德王后) 권씨(權氏), 비는 정순왕후(定順王后) 송씨(宋氏)이다.
1. 등극당시 상황
1448년(세종 30) 8세 때 의정부의 청으로 왕세손에 책봉되고, 1450년 문종이 즉위하자 왕세자로 책봉되었다. 이해 문종이 왕세자를 위하여 처음으로 서연을 열고 사(師)‧빈(賓)들과 상견례를 행할 때, 좌빈객 이개(李塏)우사경 유성원(柳誠源)에게 왕세자의 지도를 간곡히 부탁하였다.

1452년 5월 문종이 재위 2년 만에 경복궁 천추전(千秋殿)에서 죽자 근정전(勤政殿)에서 즉위하였다. 즉위에 즈음하여 나이가 어려 정치하는 일에 어두우니 모든 조처는 의정부와 육조가 서로 의논하여 시행할 것과, 승정원은 왕명출납을 맡고 있으므로 신하들의 사사일은 보고하지 말도록 교서를 내렸다.

문종의 고명을 받은 영의정 황보 인(皇甫仁), 좌의정 남지(南智), 우의정 김종서(金宗瑞) 등이 측근에서 보좌하고, 집현전학사출신인 성삼문(成三問)박팽년(朴彭年)하위지(河緯地)신숙주(申叔舟)이개유성원 등은 지난날 집현전에서 세종으로부터 보호를 부탁받았으므로 이들이 측근에서 협찬하였다.

이해 윤9월, 저녁 강의에서 『논어』를 강론할 때 왕이 ‘사무사(思無邪)’라는 문구의 뜻을 묻자 박팽년은 “생각하는 바가 간사함이 없는 마음이 바름을 이른 것이며, 마음이 바르게 되면 일마다 바르게 되는 것”이라 대답하였다.

10월 박팽년집현전부제학으로 삼았는데, 그의 학문이 정밀, 심오하여 경연에 강의할 때마다 자신의 배움에 깨달은 바가 많았으므로, 특별히 통정대부에 가자시켜 임명하였던 것이다.

이해 고려의 개국공신 배현경(裵玄慶)홍유(洪儒)복지겸(卜智謙)신숭겸(申崇謙)과, 유금필(庾黔弼)서희(徐熙)강감찬(姜邯贊)윤관(尹瓘)김부식(金富軾)조충(趙沖)김취려(金就礪)김방경(金方慶)안우(安祐)김득배(金得培)이방실(李芳實)정몽주(鄭夢周) 등을 왕씨(王氏) 묘정(廟庭)에 종사(從祀)하도록 하였다.
2. 수양대군의 권력찬탈
1453년(단종 1) 4월경회루에 나가서 유생들을 친히 시험 보이고, 또 모화관에 가서 무과를 베풀었는데 권언(權躽) 등 40명이 뽑혔다. 온성함흥의 두 고을에 성을 쌓고, 나난(羅暖)무산(茂山)의 두 성보(城堡)를 설치하였다.

악학제조 박연(朴堧)세종『어제악보(御製樂譜)』를 인쇄, 반포하기를 청하니, 왕이 이를 허가하였다. 왕이 대신 황보 인김종서정분(鄭苯) 등을 불러 그들에게 자문하여 박중림(朴仲林)대사헌에 임명하였다. 이해 10월 작은아버지인 수양대군(首陽大君)이 정권을 빼앗고자 자기 측근인 권람(權擥)한명회(韓明澮)의 계책에 따라 무사를 거느리고 가서 좌의정 김종서는 그의 집에서 죽이고, 영의정 황보 인, 병조판서 조극관(趙克寬), 이조판서 민신(閔伸), 우찬성 이양(李穰) 등은 대궐에 불러와서 죽였다. 이들의 죄명은 작은아버지인 안평대군(安平大君)을 추대하여 종사를 위태롭게 하였다는 것이다.

갑자기 일어난 일이므로 일의 옳고 그름을 가리기도 전에 정권은 수양대군에게 돌아가게 되었다. 일이 이렇게 되자, 어쩔 수 없이 그들의 요구에 따라 수양대군영의정으로 삼아 군국의 중대한 일을 모두 위임시켜 처리하게 하였다.

또, 당시 거사에 참가한 사람들을 정난공신(靖難功臣)으로 인정하여 모두 공신의 칭호를 주기까지 하였다. 그리고 그들이 지칭한 난리의 장본인인 안평대군과 그 아들 이우직(李友直)은 조신들의 주청에 의하여 강화교동현(喬桐縣)에 이치(移置)되었다가 안평대군은 사사되고 이우직진도로 옮겨 안치되었다.

이 일련의 조처는 왕의 의사가 무시된 집권자인 수양대군의 주변인물들에 의하여 결정된 것이다. 이해 하위지좌사간, 성삼문우사간, 이개집의, 유응부평안도도절제사로 각각 임명하였다.
3. 수양대군의 집권과 단종의 폐위
정치의 실권을 잡게 된 수양대군은 지방에도 자기 세력을 심기 위하여 지방관을 교체시키던 중 이징옥(李澄玉)의 난을 겪기도 하였다.

한편, 양성지(梁誠之)로 하여금 『조선도도(朝鮮都圖)』『팔도각도(八道各圖)』를 편찬하게 하였다.

1454년 정월 송현수(宋玹壽)의 딸을 맞이하여 왕비로 삼았다. 이 달에 직집현전 양성지『황극치평도(皇極治平圖)』를 찬진하고, 3월 춘추관에서 『세종실록』을 찬진하였다.

5월 좌승지 박팽년이 경연에서 왕에게 안일과 태만을 경계하도록 진언하였는데, 이는 왕이 대궐 안에서 자주 활쏘기를 구경하면서 경연을 여려 차례 정지시켰기 때문이었다.

8월 각 도의 관찰사에게 유시하여 효자(孝子)‧순손(順孫)‧의부(義夫)‧절부(節婦)와 공평, 청렴하고 현저히 공적이 있는 수령을 상세히 기록하여 알리도록 하였는데, 이는 그들을 발탁, 등용하여 권장하기 위해서이었다. 보루각(報漏閣)을 수리하고 『고려사』를 인쇄, 반포하였다.

12월 각 도의 관찰사에게 유시하여, 둔전(屯田)설치계획을 수립하여 알리도록 하였다.

1455년 윤6월 수양대군이 조정의 제신들과 의논하여 왕의 측근인 금성대군(錦城大君) 이하의 여러 종친‧궁인 및 신하들을 모두 죄인으로 몰아 각 지방에 유배시키기를 청하자, 하는 수 없이 그대로 따랐다. 이러한 급박한 주변정세에 단종은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마침내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물려주고는, 상왕(上王)이 되어 수강궁(壽康宮)으로 옮겨 살았다.

1456년(세조 2) 6월 상왕을 복위시키려는 사건이 일어났는데, 이 복위사건의 주동인물은 지난날 집현전학사 출신인 몇몇 문신과 성승(成勝)유응부(兪應孚) 등 무신들이었다. 이들은 세종문종에게 특별한 은혜를 입었으며, 또 원손(元孫: 端宗)을 보호해달라는 간곡한 부탁을 받았으므로 어린 상왕을 복위시키는 것은, 곧 이들의 국가에 대한 충성이며 선비의 행할 의무이기도 하였다.

이때 마침 명나라 사신을 창덕궁에 초대하여 연회하는 날, 그 자리에서 세조를 죽이고 측근 세력도 제거한 뒤 단종을 복위시키려 하였으나, 그 계획이 실행되기도 전에 동모자인 김질(金礩)의 고발에 의하여 결국 실패하고, 이 사건의 주동인물 중 많은 사람이 사형을 받게 되었다.

단종은 이 사건이 있은 뒤 더욱 불안을 느끼고 있었는데, 조신 가운데 상왕도 이 사건에 관련되었다는 이유로 서울에서 내쫓자는 주청이 있자, 1457년 6월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봉되어 강원도 영월에 유배되었다. 영월에서 유폐생활을 하는 동안, 매양 관풍매죽루(觀風梅竹樓)에 올라 시를 지어 울적한 회포를 달래기도 하였다.

이해 9월 경상도 순흥에 유배되었던 노산군의 작은아버지인 금성대군(錦城大君)이 다시 복위를 계획하다가 발각되어, 다시 노산군에서 서인으로 강봉되었다가 10월 마침내 죽음을 당하였다.

1681년(숙종 7)에 노산대군으로 추봉되고, 1698년 전 현감 신규(申奎)의 상소에 의하여 복위시키기로 결정되었다. 시호를 공의온문순정안장경순돈효대왕(恭懿溫文純定安莊景順敦孝大王)으로, 묘호를 단종으로 추증하고, 능호(陵號)를 장릉(莊陵)이라 하였다.

[참고문헌]

世宗實錄
文宗實錄
端宗實錄
成宗實錄
仁宗實錄
宣祖實錄
肅宗實錄
英祖實錄
正祖實錄
純祖實錄
莊陵誌
璿源系譜

[집필자]

이재호(李載浩)

봉호 : "노산군(魯山君)"에 대한 용례

전거용례
歷代總要v04初進封王世子壬申五月卽位乙亥閏六月禪位于世祖七月尊爲太上王丁丑英宗天順元年我世祖二年○六月遜于外降封魯山君十月二十四日甲寅昇遐于寧越在位三年在上王位二年春秋十七無嗣○肅宗辛酉追封大君戊寅復位莊陵在寧越冬乙旨
國朝編年v06○上御經筵講禮記論及秦厲公事講官金硡奇遵等微及爲燕山君立後之意領經筵事鄭光弼亦諷諭之上延訪他大臣竝論魯山君燕山君立後當否又令弘文館禮曹博考古制左承旨權撥右承旨金正國極論魯山君燕山君不可不立後曰恭順公芳蕃昭悼
國朝編年v07十六年三月武宗皇帝崩世宗立改元嘉靖○六月魯山君夫人宋氏卒年八十二命禮曹喪禮依大君夫人例葬于楊州墓在於魯山君甥姪海平府院君鄭眉壽悰之子墓山之內夫人生時不欲㞐在城內願處東郊瞻望魯陵故自朝家營室于東大門外號英嬪而
紀年便攷v3辛酉世宗二十三年七月二十三日誕庚午册封王世子壬申五月卽位乙亥閠六月禪位于世祖尊為太上王丁丑遜于外降封魯山君十月二十四日昇遐于寧越在位三年在上王位二年春秋十七肅宗七年辛酉追封大君二十四年戊寅追復位無嗣 莊陵寧
紀年便攷v7院君世祖朝策佐翼㓛一等年三十九典文衡丁丑錦城事發叔舟獨啓曰去年李塏等以 魯山為名今瑜亦欲挾 魯山倡亂魯山君不可安居也於是政府宗親繼之乃賜死 魯山妃宗氏没為官婢叔舟欲以㓛臣婢受出上不許成三問等獄事出是夕妻尹氏
紀年便攷v8左議政鄭昌孫吏曺判書韓明澮䓁来與申叔舟啓曰魯山為反逆所主不可安居也上曰魯山已降封君廢為庶人可也○十月魯山君卒于寧越讓寧大君禔䓁上疏曰奸㐫之變 魯山預焉得罪 宗社天地之所不容請断以大義明正典刑宗親府議政府忠勳
紀年便攷v8宗社不宜安居京師請之不已予固不允欲保初心到今人心未定煽亂之徒継踵不息予豈得以私恩曲大法特従羣議降封為魯山君俾出居寧越厚奉衣食以保終始以定國心惟爾政
紀年便攷v8曉諭中外○國朝譜牒舊註曰乙亥降封君顯德王后遷陵誌文曰丙子五月遜于外降封君世祖實錄曰丁丑六月遜于外降封魯山君今從實錄
紀年便攷v8始四月畢印五十件分藏名山巨剎凡入紙三十八萬八千九百餘貼一件入七千七十八貼也○慶尙道觀察使進嘉禾却之○魯山君自清冷浦移寓或云量移于客舍東軒以潦水之患移庽于客舍東軒每登觀風軒梅竹樓夜坐使人吹笛聲達遠邨又於樓中咏
紀年便攷v8無暇窮恨年年恨不窮聲断曉岑殘月白血流春谷落花紅天聾尙未聞哀訴何奈愁人耳獨聦時境內旱㷊香禱天雨輒霔○廢魯山君為庶人左䝺成申叔舟曰去年李塏䓁以魯山為名而為之今瑜亦欲挾魯山瓔倡亂魯山不可安居也上曰議政府必再来俄而
紀年便攷v8曰奸㐫之變 魯山預焉得罪 宗社天地之所不容請断以大義明正典刑宗親府議政府忠勳府六曺啓曰近日亂言者皆以魯山君為言今若不寘於法則欲圖富貴者藉以搆亂不可宥也於
紀年便攷v8儀禮畢還宫受百官賀賜諸道大酺三日○定宗臣封爵之制以顯祿興祿以下為階○始立注書記洼之法○六月降封上王為魯山君降 王大妃為夫人教曰前日成三問言上王預其謀宗親百官合辭以為上王得罪宗社不宜安居京師請之不已予固不允欲
紀年便攷v8牒舊註曰乙亥降封君顯德王后遷陵誌文曰丙子五月遜于外降封君世祖實錄曰丁丑六月遜于外降封魯山君今從實錄○魯山君發向寧越僉知魚得海率五十軍護送軍資正金自行內侍府事洪得敬従行○魯陵誌曰安寘于清冷浦在府西○七月元孫成
紀年便攷v8憲端宗朝䇿靖難㓛二等封鈴平府院君世祖朝佐翼㓛三等以百姓金正水言告宋玹壽權完謀逆並下義禁府命降封上王為魯山君出居寧越官止禮判謚安成
紀年便攷v10忌曰僧齋之設 國朝王室忌辰亦有循俗行之至是因檢討官趙光祖筵白命永罷之一遵 皇朝禮行忌祭於陵寢○致祭 魯山君燕山君墓上御經筵講官奇遵金硡微及燕山立後之意領府事鄭光弼亦諷之并及 魯山事上召羣臣議柳洵䓁皆以為難上
紀年便攷v10磌李忠楗趙光佐李若水宗好禮申抃并杖死崔壽峸奉天祥宗室奴鶴年并被誅祀連賞加折衝賜被罪人田宅奴婢○六月 魯山君夫人卒逝春秋八十二○南袞矯製殺韓忠先是忠以忠清水使過振威遇一人言論奇偉不言姓名而退忠以為賢者白於上物
紀年便攷v13清節義草木亦知真所謂鵷班之鶚殿上之猛虎也若罪鄭澈是朱雲可斬乙酉以後退䖏南中李珥被劾澈山爲東伯上疏修 魯山君墓己丑入相至左汝立獄多傳生意崔永慶之入鞫獄澈實營救而反被鍜鍊之誚及其再入澈已不在委官欲上䟽救之未果而
紀年便攷v19此心無所着下馬臨川流川流亦如我嗚咽去不休端宗右清冷浦哀而作歌止男用其意作短詞一云世祖丁丑禁府都事陪置魯山君于清泠浦夜坐灘岸上哀而作歌曰쳔만리머다먼길에고은님여의고마둘업셔냇가의안져니니뎌물도안갓도
紀年便攷v25乃奏請行之○日本對馬島主平義成遣橘成正致書幣于禮曹及邊臣仍請賜祭于萬松院家康廟朝廷不許○遣承旨致祭于魯山君燕山君墓因副學金益煕陳白也○行良田于京畿左議政金俼上箚陳請也○削江原道觀察使閔光勳職時江陵府隕霜於六
紀年便攷v26涑吏曺叅判并因趙復陽所建白也○左參賛宋浚吉上劄進太極隂陽圖一本仍請粧為障子張諸座右上優批嘉納○命寕越魯山君祠宇參奉題給料米分畨守墓軍亦為給復従原襄道觀察使鄭榏之言也○行量田於忠清黃海二道命罪人出嫁女勿施連坐
紀年便攷v26差○命陞茂朱縣為府儲糧錬兵以赤裳山城䖏湖嶺三道之交素称天險宜為大鎮因全南道觀察使李東稷之言有是命○命魯山君墓官致四時祭需○灾異荐見闕中有䑕妖遍滿寝殿色白者多雲觀教授金克晩聞而憂之曰當黑者白則必有喪非喪則且有
紀年便攷v26甲寅十五年康熙十三年置魯山君夫人墓守户祭田○二月仁宣大妃孝宗妃 昇遐春秋五十七○大王大妃仁祖繼妃趙氏服制命以大功改付標成服前一日
歷代帝王紀年v01同陵生一子二女○一嗣弘暐魯山君文宗子
國朝人物志v1放于廣州禔自是韜晦其跡弊褐瘦驢放浪山水間殆類之越而文身世稱有泰伯至德是也端宗降封魯山君禔率宗親上疏曰前日奸凶之變魯山預焉得罪宗社瑜擧兵而叛將欲挾魯山以危宗社罪惡貫盈天地之所
國朝人物志v1上惻然曰文宗外孫惟汝一人置之膝歔欷流涕賜名眉壽及長歷官右贊成封海平府院君魯山君夫人以眉壽爲侍養子英祖戊寅賜悰諡獻愍錄其孫莊陵志
國朝人物志v1世祖爲領議政摠知軍國事兼判兵曹以擥錄靖難功一等勳丙子殺成三問等降上王爲魯山君錄佐翼功一等勳封吉昌府院君上受禪奉使如燕還爲吏曹判書擥乞閒上手札報曰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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