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유(洪儒)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2D64DC720FFFFD0936X0 |
이명(異名) | 술(術) |
이명(異名) | 술(述) |
생년 | ?(미상) |
졸년 | 936(태조 19) |
시대 | 고려전기 |
활동분야 | 무신 > 무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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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내용]
홍유(洪儒)
미상∼936년(태조 19). 고려의 무신. 의성부(義城府)사람. 초명은 술(術, 述).
마군장군(馬軍將軍)으로 신숭겸(申崇謙)‧복지겸(卜智謙)‧배현경(裵玄慶)과 함께 혁명을 일으켜 궁예(弓裔)를 몰아내고 왕건(王建)을 추대하여 개국1등공신이 되었다.
태조 즉위 후 청주(靑州)에서 변란이 일어나므로 유금필(庾黔弼)과 함께 진주(鎭州: 鎭川)에 주둔하며 이에 대비하였다.
이듬해인 919년(태조 2)에는 오산성(烏山城)을 고쳐 예산현으로 하자 대상(大相) 애선(哀宣)과 함께 유민(流民) 500여호를 옮겨 안정시키기도 하였으며, 이어 대상에서 태사 삼중대광(太師三重大匡)으로 올랐다. 그리고 그의 딸은 태조의 26번째 부인인 의성부원부인(義城府院夫人)이 되어 의성부원대군을 낳기도 할 만큼 태조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였다.
936년 후백제를 쳐 후삼국을 통일할 때 일리천(一利川)의 전투에서 마군을 거느리고 우군(右軍)에 참여하여 큰 공을 세웠다.
994년(성종 13) 태사가 추증되었으며, 태사개국충렬공(太師開國忠烈公)으로서 태조의 묘정에 배향되었다.
마군장군(馬軍將軍)으로 신숭겸(申崇謙)‧복지겸(卜智謙)‧배현경(裵玄慶)과 함께 혁명을 일으켜 궁예(弓裔)를 몰아내고 왕건(王建)을 추대하여 개국1등공신이 되었다.
태조 즉위 후 청주(靑州)에서 변란이 일어나므로 유금필(庾黔弼)과 함께 진주(鎭州: 鎭川)에 주둔하며 이에 대비하였다.
이듬해인 919년(태조 2)에는 오산성(烏山城)을 고쳐 예산현으로 하자 대상(大相) 애선(哀宣)과 함께 유민(流民) 500여호를 옮겨 안정시키기도 하였으며, 이어 대상에서 태사 삼중대광(太師三重大匡)으로 올랐다. 그리고 그의 딸은 태조의 26번째 부인인 의성부원부인(義城府院夫人)이 되어 의성부원대군을 낳기도 할 만큼 태조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였다.
936년 후백제를 쳐 후삼국을 통일할 때 일리천(一利川)의 전투에서 마군을 거느리고 우군(右軍)에 참여하여 큰 공을 세웠다.
994년(성종 13) 태사가 추증되었으며, 태사개국충렬공(太師開國忠烈公)으로서 태조의 묘정에 배향되었다.
[참고문헌]
三國史記
高麗史
高麗史節要
高麗史
高麗史節要
[집필자]
박한설(朴漢卨)
성명 : "홍유(洪儒)"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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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