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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질(金礩)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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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가안(可安)
호(號)쌍곡(雙谷)
시호(諡號)문정(文靖)
생년1422(세종 4)
졸년1478(성종 9)
시대조선전기
본관안동(安東[舊])
활동분야문신 > 문신
김종숙(金宗淑)
증조부김사형(金士衡)
처부정창손(鄭昌孫)
처부정창손(鄭昌孫)
공신호좌익공신(佐翼功臣)
공신호좌리공신(佐理功臣)

[상세내용]

김질(金礩)
1422년(세종 4)∼1478년(성종 9). 조선 초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舊]). 자는 가안(可安), 호는 쌍곡(雙谷).

증조부는 개국공신 김사형(金士衡), 부친은 동지중추부사 김종숙(金宗淑), 부인은 영의정 정창손(鄭昌孫)의 딸이다. 세종 말년에 문음(門蔭)으로 충의위(忠義衛)에 속하여 부사에 이르렀을 때, 성균관에서 수학하기를 청하여 허락받았다. 성균관에서 참상관의 수학제도가 이로부터 비롯되었다.

1450년(문종 즉위) 추장문과에 정과로 급제하여 성균관주부에 제수된 이후, 사간원우정언병조좌랑을 거쳐 1455년(세조 1)에는 성균관사예에 이르렀다. 이 무렵 성삼문(成三問)박팽년(朴彭年) 등의 집현전학사와 함께 단종복위를 꾀하는 모임을 수차 가지던 중 위험을 느끼자, 1456년 장인인 정창손(鄭昌孫)과 함께 세조에게 고변하여 이른바 사육신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그뒤 세조의 철저한 신임을 받아 좌익공신(佐翼功臣) 3등에 추봉되고 판군기감사에 승진되었다. 이어 승정원동부승지우부승지좌승지를 거쳐, 1459년에는 병조참판이 되면서 세조의 국방정책 수립에 참여하고 상락군(上洛君)에 봉하여졌다.

이듬해에는 두 차례에 걸친 세조의 서도순행(西道巡幸)을 위하여 황해도평안도도순찰사가 되고, 1461년에는 평안도도관찰사가 되었다.

1463년에 공조판서에 오른 뒤 병조형조판서를 거쳐 1466년 의정부우참찬에 승진되었다.

이듬해에 경상도관찰사가 되고, 1468년(예종 즉위)에는 우의정에 올랐다. 이어 좌의정에 승진된 뒤 영의정 한명회(韓明澮)신숙주(申叔舟) 등과 함께 이른바 원상세력(院相勢力)을 형성하였다. 이들 원상세력과 함께 나이 어린 예종성종 초기에 국정서무를 주관하고 정치적 영향력이 큰 구성군(龜城君) 이준(李浚)을 제거하여, 1471년 좌리공신(佐理功臣) 2등으로 상락부원군(上洛府院君)에 진봉되었다.

1474년에는 다시 우의정에 임명되어 주문사(奏聞使)로서 명나라에 다녀왔다.

세조의 공신으로, 특히 세조의 병제개편에 깊이 관여하였으며 『경국대전』 편찬에도 참여하였다.

1465년에 병전(兵典)을 고열(考閱)하고, 1470년에는 이전(吏典)의 교정도 맡았다. 시호는 문정(文靖)이다.

[참고문헌]

世祖實錄
成宗實錄
大東野乘
朝鮮初期支配勢力硏究(鄭杜熙, 一潮閣, 1983)
王權의 確立과 制度의 完成(韓永愚, 한국사 9, 국사편찬위원회, 1981)
經國大典의 編纂과 頒行(朴秉濠, 한국사 9, 국사편찬위원회, 1981)

[집필자]

이근수(李根洙)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