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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건(李自健)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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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건지(健之)
시호(諡號)공간(恭簡)
생년1455(세조 1)
졸년1524(중종 19)
시대조선전기
본관성주(星州)
활동분야문신 > 문신
이주(李湊)
외조부권유순(權有順)

[상세내용]

이자건(李自健)
1455년(세조 1)∼1524년(중종 19).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건지(健之).

부친은 건공장군(建功將軍) 이주(李湊)이며, 모친은 안동권씨 부사 권유순(權有順)의 딸이다.

1480년(성종 11) 생원이 되고, 1483년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정자박사성균관전적사헌부감찰을 거쳐 사간원정언형조좌랑사헌부지평예조정랑을 지냈으며, 1495년(연산군 1) 사헌부장령으로 명나라에 다녀와서 사헌부집의군기시정승문원판교를 역임하였다. 평소 무재(武才)가 있고 중국어에 능하여 항상 선전관승문원의 벼슬을 겸하였다.

1500년 동부승지, 1502년 좌승지도승지, 이듬해 충청도관찰사를 역임하고 대사헌에 이르렀다.

이때 연산군에게 “대간(臺諫)을 시켜서 기생들의 가사(歌詞)를 지어 올리도록 하는 일은 성덕(聖德)에 누가 될 것입니다.”라고 하여 중지하도록 하였으므로, 집의 이계맹(李繼孟)이 “공(公)이 아니었다면 후세의 조롱을 면치 못하였을 것이다.”라고 하였고, 우상 이극균(李克均)이 “당대의 풍헌(風憲)을 지킨 사람은 오직 이모(李某)뿐이다.”라고 하였다.

이어 갑자사화에 연루, 선산에 유배되었다가 중종반정으로 대사헌에 복직되었다.

그뒤 한성부좌윤호조참판황해도관찰사형조참판경기도관찰사형조판서좌우참찬호조판서한성부판윤을 거쳐, 공조판서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시호는 공간(恭簡)이다.

[참고문헌]

成宗實錄
燕山君日記
中宗實錄
國朝人物考
燃藜室記述
國朝榜目

[집필자]

권인혁(權仁赫)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