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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

[요약정보]

시대조선(朝鮮)
대분류관직
중분류동반
소분류문관

[품계]

정6품(正六品)

[상세내용]

조선시대 성균관(成均館)에 둔 정육품(正六品) 관직으로 정원은 13원이다. 위로 지사(知事:正二品)가 1원으로 대제학(大提學)이 정례대로 겸직하며, 동지사(同知事:從二品) 2원, 대사성(大司成:正三品), 좨주(祭酒:正三品), 사성(司成:從三品) 각 1원, 사예(司藝:正四品) 2원, 사업(司業:正四品) 1원, 직강(直講:正五品) 4원이 있고, 아래로 박사(博士:正七品), 학정(學正:正八品), 학록(學錄:正九品), 학유(學諭:從九品) 각 3원이 있다. 대사성 이하 성균관에 소속된 관원을 총칭하여 관직(館職)이라고 하였다.

조선건국 직후 성균관의 직제는 고려시대의 직제가 그대로 이어졌으며, 전부(典簿:正六品) 1원을 두었다. 1401년(태종 1) 7월 직제의 일부가 개정되어 전부를 주부(主簿:正六品)로 개칭하였다. 1466년(세조 12) 1월 관제개혁 때 주부를 전적(典籍)으로 바꾸면서 정원이 13원으로 증원되었고, 전적은 도적(圖籍)의 수장(收藏)과 출납‧관리의 일을 맡았다. 전적의 관장 하에 성균관의 분장(分掌)인 추쇄색(推刷色)과 공방(工房)이 있었다.

종학(宗學)의 전훈(典訓:正五品) 이하를 사예(司藝:正四品)‧직강(直講:正五品)‧전적이, 경국대전에는 양현고(養賢庫)의 주부를 전적이, 사학(四學)에서는 전적 이하 20인이 사학훈도(四學訓導)를 겸하고 있는 것 등으로 보아 겸직이 많았다. 대전회통에서는 정원이 4원으로 줄고, 종팔품(從八品)으로 낮아지면서 승문원의 참외관(參外官)이 겸하게 되었다.

[별칭]

-

[참고문헌]

『대전회통(大典會通)』

[집필자]

이재옥(李載玉)
수정일 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을 통해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