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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반(金槃)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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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사일(士逸)
호(號)허주(虛州)
생년1580(선조 13)
졸년1640(인조 18)
시대조선중기
본관광산(光山)
활동분야문신 > 문신
김장생(金長生)
외조부조대건(曺大乾)

[상세내용]

김반(金槃)
1580년(선조 13)∼1640년(인조 18).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사일(士逸), 호는 허주(虛州).

부친은 문원공(文元公) 김장생(金長生)이고, 모친은 창녕조씨부사 조대건(曺大乾)의 딸이며, 김집(金集)의 아우이다. 송익필(宋翼弼)의 문인으로, 세거지는 충청남도 연산(連山)이다.

1605년(선조 38) 사마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의 거재유생(居齋儒生)이 되었다.

1613년(광해군 5)에 계축옥사가 일어나자 낙향하여 10여년 동안 초야에 은거하며 학문을 탐구하였다.

1623년(인조 1) 인조반정 후 빙고별제(氷庫別提)에 임명되었으나 나가지 않았다.

이듬해 이괄(李适)의 난 때 인조공주로 호종(扈從)하였다가 공주행재(公主行在)에서 실시한 정시문과에 급제, 호종의 공으로 성균관전적이 되었다.

그뒤 형조좌랑예조좌랑사간원정언홍문관수찬부교리를 거쳐, 1625년 시강원문학(侍講院文學)사간원헌납홍문관교리 등을 역임하였다.

1626년 인헌왕후가 죽자 이귀(李貴)의 편견을 배척하였다. 곧 이조좌랑에 임명되고, 이어 정랑에 올랐다. 정묘호란 때 인조강화로 호종하고 돌아와 사인(舍人)겸보덕(兼輔德)응교(應敎)전한(典翰)을 역임하였다.

1635년 병조참지(兵曹參知)대사간우부승지형조참의대사성부제학 등을 두루 역임하였다.

이듬해 병자호란으로 남한산성에 호종하여 왕에게 장병을 독려하도록 건의하였다. 화의가 이루어지자 호종한 공으로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랐다.

그뒤 대사성예조참판병조참판대사헌한성부우윤대사간이조참판 등 요직을 역임하였으며, 죽은 뒤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참고문헌]

仁祖實錄
國朝人物考
淸陰全集(金尙憲)
愼獨齋集(金集)

[집필자]

김창현(金彰顯)

명 : "반(槃)"에 대한 용례

전거용례
東藩大義v7我勢稍強然後可成不然則徒解軍心而已我援雖未及至不可不出萬死而一戰也上同○大司諫金槃督戰御史鄭雷卿請對曰似聞沈悅上疏陳和事軍情極爲駭憤請下其疏焚之於軍士所見處沈悅遠竄捧入承旨推考雷卿曰臣今始聞之果爲駭愕
東藩大義v7成決矣而聞馬賊之來使重臣出接云極爲駭異何可與彼更爲酬酢乎上曰兵交使在其中只探其情不爲見欺則是亦一道也曰大凡和事必我勢稍強然後可成不然則徒解軍心而已我援雖未及至不可不出萬死而一戰也上同○大司諫金槃督戰御
東藩大義v7入虎穴不得虎子欲使兵不血刃而殲賊不亦難乎上曰善丙丁日錄○大司諫金槃執義蔡裕後掌令李厚源正言趙壽益請對曰和事之不可成決矣而聞馬賊之來使重臣出接云極爲駭異何可與彼更爲酬酢乎上曰兵交使在其中只探其情不爲見欺
國朝人物志v3子集弟宣祖乙巳進士仁祖甲子文科歷三司官至參判子益煕以督戰御史守南漢謂曰須明白就死以表此心可也人物考
國朝人物志v3字汝南光州人子益煕弟乙亥生員壯元丙子淸人僭號又以蒙古使人偕至益兼時年二十二與同志上疏請斬蒙
國朝人物志v3字懋叔光山人子文元公長生孫母徐氏殉節于丙子江都之亂戊子以蔭補都事累官特除御營大將許積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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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