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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옥형(丁玉亨)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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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가중(嘉中)
호(號)월봉(月峰)
시호(諡號)공안(恭安)
생년1486(성종 17)
졸년1549(명종 4)
시대조선전기
본관나주(羅州)
활동분야문신 > 문신
정수강(丁壽崗)
공신호보익공신(保翼功臣)

[상세내용]

정옥형(丁玉亨)
1486년(성종 17)∼1549년(명종 4).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가중(嘉中), 호는 월봉(月峰). 병조참판 정수강(丁壽崗)의 아들이다.

1513년(중종 8)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검열이 되고, 승정원주서를 거쳐 1511년 조광조(趙光祖)와 더불어 경연검토관으로서 활약하였다.

그뒤 이조좌랑을 지내고, 1518년 사헌부지평장령을 역임한 뒤 1521년 의정부사인이 되었다.

이듬해에 홍문관교리응교를 지내고, 사간원사간사헌부집의를 지냈으며, 1525년 홍문관전한직제학을 거쳐 부제학에 올랐다.

그뒤 좌부승지병조참지이조참의를 역임하고, 1533년 도승지가 되었다. 청요직(淸要職)을 두루 거친 뒤 대사간대사헌에 이르러 국가의 기강을 확립하는 데에 힘썼다.

당시 김안로(金安老)가 권세를 오로지하자, 그에 의부(依附)하기를 꺼려하여 외직으로 나가 충청도관찰사가 되고, 임기가 끝나자 다시 전라도관찰사가 되어 선정을 베풀었다.

1536년 병조참판으로서 태자진하사(太子進賀使)가 되어 명나라북경에 다녀왔고, 이듬해에 예조참판이조참판을 역임하고 다시 외직으로 경기도관찰사가 되었다.

이듬해에 다시 병조참판을 지내고 1539년 공조판서에 올라 형조판서를 거쳐 대사헌을 다시 역임하였다. 이어서 우참찬예조판서좌참찬을 거쳐 지돈녕부사가 되었다가 1544년 병조판서가 되어 국방문제를 총괄하였다.

이듬해 명종 즉위와 더불어 형조판서가 되어 소윤에 가담, 대윤을 제거하는 데 협력하여 보익공신(保翼功臣) 3등에 책록되고 금천군(錦川君)에 봉해졌다.

형조판서로서 전장(典章)에 밝아 『대전후속록(大典後續錄)』 편찬에 참여하였다.

그뒤 좌찬성에 올랐다가 죽었다. 기국 도량(器局度量)이 있고, 직무에 과단성을 보였으며, 언행에 책임을 졌고, 권세가들의 간섭에도 굴하지 않고 직무에 충실하였다. 시호는 공안(恭安)이다.

[참고문헌]

中宗實錄
仁宗實錄
明宗實錄
國朝榜目
國朝人物考
燃藜室記述

[집필자]

최완기(崔完基)

명 : "옥향(玉享)"에 대한 용례

전거용례
郯述v02玉享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