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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욱(金光煜)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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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회이(晦而)
호(號)죽소(竹所)
시호(諡號)문정(文貞)
생년1580(선조 13)
졸년1656(효종 7)
시대조선중기
본관안동(安東[新])
활동분야문신 > 문신
김상준(金尙寯)
저서『죽소집』

[상세내용]

김광욱(金光煜)
1580년(선조 13)∼1656년(효종 7).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新]). 자는 회이(晦而), 호는 죽소(竹所).

형조참판 김상준(金尙寯)의 아들이다.

1606년 진사시에 제1인으로 합격하고, 같은해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에 배속되었다가 검열대교봉교를 거쳐 병조좌랑정언부수찬 등을 역임하였다.

1611년(광해군 3) 다시 정언이 되어, 이언적(李彦迪)이황(李滉)의 문묘종사(文廟從祀)를 반대하는 정인홍(鄭仁弘)을 탄핵하였다.

1613년 계축옥사에 아버지와 함께 연루되어 국문을 받았으나 곧 풀려났으며, 1617년 폐모논의를 위한 정청(庭請)에도 참가하지 않아 삭직되자 고양(高陽)에 은거하였다. 인조반정 후 복관되어 고산찰방(高山察訪)고원군수(高原郡守)판교(判校)홍주목사(洪州牧使) 등을 역임하였다.

1633년(인조 11) 양서관향사(兩西管餉士)로 국가재정의 확보에 큰 공을 세웠다.

1641년 황해도관찰사로 나갔고, 경직에 돌아와 병조참의가 되었으며, 1644년 부승지 겸 세자빈객으로 세자를 모시고 청나라에 다녀왔다.

그뒤 도승지병조참판호조참판을 거쳐 경기감사로 나가 수원부사 변사기(邊士紀)의 모역사건을 밝혀냈다. 효종 즉위 후 개성유수에 보임되었으며, 동지사로 다시 청나라에 다녀왔고, 지중추부사 겸 판의금부사를 거쳐 우참찬에 올랐다.

문예와 글씨에 뛰어났으며, 『장릉지장(長陵誌狀)』을 찬하였다.

저서로는 『죽소집』이 있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참고문헌]

宣祖實錄
光海君日記
仁祖實錄
國朝人物考
國朝榜目

[집필자]

장동익(張東翼)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