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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언수(趙彦秀)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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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백고(伯高)
호(號)신선당(信善堂)
시호(諡號)정간(貞簡)
생년1497(연산군 3)
졸년1574(선조 7)
시대조선전기
본관양주(楊州)
활동분야문신 > 문신
조방좌(趙邦佐)
5대조조말생(趙末生)
외조부신형(申泂)
공신호위사원종공신(衛社原從功臣)

[상세내용]

조언수(趙彦秀)
1497년(연산군 3)∼1574년(선조 7).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양주(楊州). 자는 백고(伯高), 호는 신선당(信善堂). 영중추부사 조말생(趙末生)의 5대손으로, 조방좌(趙邦佐)의 아들이며, 모친은 증우의정 신형(申泂)의 딸이다.

1531년(중종 26) 소과를 거쳐 1535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검열사서경차관(敬差官)사인응교전한직제학 등을 지내고, 1546년(명종 1) 위사원종공신(衛社原從功臣) 1등에 책록되면서 동부승지좌승지에 이르렀다.

이듬해 도승지에 오르고, 1548년 광주목사(光州牧使)호조참판대사헌을 거치면서 성절사(聖節使)명나라에 다녀왔다.

1549년 함경도관찰사, 1551년 한성부좌윤, 이후 강원도관찰사한성부우윤, 예조이조참판을 역임하고, 1559년 한성부판윤, 이듬해 형조판서, 1561년 동지중추부사우참찬, 1566년 공조판서를 역임하였으며, 이듬해 지중추부사로 치사(致仕)하였다. 삼조(三朝)에 역사(歷仕)하기 40년에 물려받은 집 한칸을 겨우 지켰고, 죽은 뒤에는 상을 치를 돈이 없어 부의로 겨우 염습하였을 정도로 청백하였다 한다.

서경덕(徐敬德)과는 동년진사(同年進士)로, 그의 경학(經學)을 매우 높이 여겨 함께 진사가 된 것을 늘 자랑으로 생각하였다.

또, 중국에 사신으로 갔을 때에는 그의 덕스러운 용모를 흠모하여 예부상서(禮部尙書)가 사사로이 초치하여 『사서구결(四書口訣)』을 선물로 주기도 하였다. 시호는 정간(貞簡)이다.

[참고문헌]

中宗實錄
仁宗實錄
明宗實錄
宣祖實錄
國朝榜目
海東名臣錄
國朝人物考

[집필자]

윤용혁(尹龍爀)

명 : "언수(彦秀)"에 대한 용례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