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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일(權相一)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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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태중(台仲)
호(號)청대(淸臺)
시호(諡號)희정(僖靖)
생년1679(숙종 5)
졸년1759(영조 35)
시대조선중기
본관안동(安東)
활동분야문신 > 문신
권심(權深)
경주이씨(慶州李氏)
외조부이달의(李達意)
출생지상주의 근암리(近嵒里)
저서『청대집』
저서『초학지남(初學指南)』
저서『관서근사록집해(觀書近思錄集解)』
저서『소대비고(昭代備考)』
저서『가범(家範)』
저서『역대사초상목(歷代史抄常目)』
저서『일기(日記)』

[상세내용]

권상일(權相一)
1679년(숙종 5)∼1759년(영조 35).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태중(台仲), 호는 청대(淸臺). 상주의 근암리(近嵒里)에서 출생했다.

부친은 증이조판서 권심(權深)이며, 모친은 경주이씨(慶州李氏)부사 이달의(李達意)의 딸이다. 학문을 일찍 깨우쳐 20세에 옛사람들의 독서하는 법과 수신하는 방법을 모아 「학지록(學知錄)」을 저술하였다.

1710년(숙종 36)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부정자가 되었으며, 1715년 저작전적직강 등을 역임하고, 1720년 예조좌랑을 지냈다.

1722년(경종 2) 병조좌랑을 지내고, 1727년(영조 3)에는 만경현령이 되어 이듬해 일어난 이인좌(李麟佐)의 난을 사전에 탐지하여 영문에 보고하고, 난을 토벌하여 공을 세웠다.

1731년 영암군수사헌부장령을 지내고, 1733년 양산군수군자감정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같은해 『퇴계언행록(退溪言行錄)』을 교열하여 간행하고, 이듬해 상소하여 민폐근절책과 관기숙정방안을 건의했다. 홍문관의 계청에 의하여 경연에 참석하여 소신을 진술했다.

그해 울산부사가 되어 춘추관편수관을 겸임하고, 구강서원(鷗江書院)을 창립하여 학문을 진흥시켰으며, 공씨에게 군역을 면제하는 등 선치를 하였다.

1741년 시강원필선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고, 1745년 봉상시정, 이듬해 사헌부헌납사간원사성사헌부집의동부승지형조참의 등을 역임하고, 1748년 우부승지로 물러났다.

뒤에 대사간판결사(判決事)홍문관부제학한성좌윤지중추부사대사헌 등을 역임하고 기로소에 들어갔다. 이황(李滉)을 사숙하여 「사칠설(四七說)」을 지어 이(理)와 기(氣)를 완전히 둘로 분리하고, 이는 본연의 성이며 기는 기질의 성이라고 주장했다.

저서로는 『청대집』 18권, 『초학지남(初學指南)』『관서근사록집해(觀書近思錄集解)』『소대비고(昭代備考)』『가범(家範)』『역대사초상목(歷代史抄常目)』『일기(日記)』 30여권이 있다.

시호는 희정(僖靖)이다. 죽림정사(竹林精舍)근암서원(近嵒書院)에 향사되었다.

[참고문헌]

英祖實錄
淸臺集

[집필자]

권오호(權五虎)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