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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문관(弘文館)

[요약정보]

시대조선(朝鮮)
대분류관서
중분류경관
소분류동반

[품계]

[상세내용]

조선시대 정삼품아문(正三品衙門)으로 궁중의 경적(經籍)을 관장하고 문한(文翰)에 전력(專力)하며 국왕의 자문에 대비하는 일을 맡는다. 1463년(세조 9)에 장서각(藏書閣)을 홍문관(弘文館)으로 개칭하면서 장서의 출납을 관장하게 했다. 1470년(성종 1) 집현전을 모방하여 예문관을 증치할 때 홍문관 소장의 장서를 이관하면서 유명무실하게 되었고 곧 폐지되었다. 1478년(성종 9)에 예문관에서 분리 독립해서 새로 설치하였으며, 연산군(燕山君) 때 진독청(進讀廳)이라 고치고, 1506년(중종 1)에 복구하였다. 1894년(고종 31)에 경연청(經筵廳)과 합쳐서 이듬해에 경연원(經筵院)으로 고쳤다가, 다시 홍문관으로 고쳐서 궁내부(宮內府)에 속하고 1907년(융희 1)에 폐지하였다.

홍문관 관원으로는 영사(領事:正一品)가 1원으로 영의정(領議政)이 예겸[경국대전에서는 의정이 했으나, 대전통편에서 영의정으로 바뀜]하며, 대제학(大提學:正二品), 제학(提學:從二品), 부제학(副提學:正三品 堂上)이 각 1원이며, 직제학(直提學:正三品 堂下)은 1원으로 대전회통에서는 도승지(都承旨)가 겸임하며, 전한(典翰:從三品), 응교(應敎:正四品), 부응교(副應敎:從四品)가 각 1원이고, 교리(校理:正五品), 부교리(副校理:從五品), 수찬(修撰:正六品), 부수찬(副修撰:從六品)이 각 2원이며, 박사(博士:正七品), 저작(著作:正八品)이 각 1원이고, 정자(正字:正九品)가 2원으로 되어 있다.

모두 문관을 임용하고, 제학 이상은 타관이 겸직하며, 모두 경연관을 겸직하였다. 대제학을 문형(文衡)이라 하고 제학을 문임(文任)이라 하였으며, 대제학과 제학을 또한 관각당상(館閣堂上)이라 하였고, 부제학 이하의 관원을 총칭 관직(館職)이라고 하였다. 또 부제학에서부터 직제학‧전한‧응교‧부응교‧교리‧부교리‧수찬‧부수찬에 이르기까지의 관원이 지제교(知製敎)를 예겸하였으며, 이들을 또한 통칭 옥당(玉堂)이라 하였고, 이 중 직제학‧전한‧응교‧부응교를 동벽(東壁)이라 하고, 교리‧부교리‧수찬‧부수찬을 서벽(西壁)이라고 하였으며, 그 밖에 박사와 저작‧정자를 속칭 남상(南床)이라고 하였다.

이속(吏屬)으로 서리(書吏) 7인[경국대전에서는 12인이었으나, 속대전에서는 22인으로 증원되었고, 대전통편에서는 15인으로 감원되었다가 대전회통에서 7인으로 감원], 서사(書寫) 2인, 장책제원(粧冊諸員) 1명, 인배(引陪) 11명, 사령(使令) 8명, 수공(水工) 1명, 군사(軍士) 3명이 있었다. 홍문관의 분장(分掌)으로 전한의 관장(管掌) 하에 책색(冊色)‧노비색(奴婢色)이 있었으며, 응교의 관장 하에 공방(工房)이 있었다.

[별칭]

옥당(玉堂), 옥서(玉署), 영각(瀛閣), 문원(文苑), 문원(文垣), 서서원(瑞書院), 청연각(淸燕閣), 관록(館錄)

[참고문헌]

『대전회통(大典會通)』

[집필자]

이재옥(李載玉)
수정일 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을 통해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