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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록(李顯祿)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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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영보(永甫)
생년1684(숙종 10)
졸년1730(영조 6)
시대조선중기
본관전주(全州)
활동분야문신 > 문신
이섭(李涉)
파평윤씨(坡平尹氏)
고조부이후원(李厚源)
외조부윤협(尹悏)

[상세내용]

이현록(李顯祿)
1684년(숙종 10)∼1730년(영조 6).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영보(永甫).

우의정 이후원(李厚源)의 현손으로, 완흥군(完興君) 이섭(李涉)의 아들이며, 모친은 파평윤씨(坡平尹氏)군자감정 윤협(尹悏)의 딸이다. 음서로 헌릉참봉(獻陵參奉)에 기용되어 장원서봉사(掌苑署奉事)제용감봉사(濟用監奉事)금구현령전주부판관 등을 거친 뒤 1722년(경종 2) 알성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예조좌랑에 올랐다.

그러나 그해에 신임사화로 노론이 추방되자 소론의 음모를 규탄하다가 순흥부에 유배되었고, 1724년에 영조가 즉위하면서 노론이 다시 집권하자 풀려나왔다.

그뒤 병조좌랑병조정랑이조좌랑부교리교리부응교응교지제교검상사인사간집의시강원문학필선 등을 역임하였다. 『숙종실록』 편찬시에는 의리를 밝히는 데 힘쓸 것을 간하기도 하였다.

1726년(영조 2) 종묘를 개수한 공로로 통정(通政)에 승계되어, 승지를 거쳐 병조참의예조참의대사간을 지내고, 홍주목사전라도관찰사로 나가 진휼과 교화 등에 힘썼다.

그러나 1727년 정미환국으로 다시 노론이 세력을 잃게 되자 파직되었다.

1728년 이인좌(李麟佐)의 난 때 공을 세워 완릉군(完陵君)에 봉해지고, 그 이듬해에는 형조참판호조참판으로 부총관비변사당상을 겸임하고, 이어 대사간대사헌 등을 역임하였다.

인품이 소탈하고 노론을 두둔하면서 의리를 밝히는 데 노력하였다.

[참고문헌]

景宗實錄
英祖實錄
國朝榜目
知守齋集

[집필자]

박정자(朴定子)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