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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태구(趙泰耉)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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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덕수(德叟)
호(號)하곡(霞谷)
생년1660(현종 1)
졸년1723(경종 3)
시대조선중기
본관양주(楊州)
활동분야문신 > 문신
조사석(趙師錫)
조부조계원(趙啓遠)

[상세내용]

조태구(趙泰耉)
1660년(현종 1)∼1723년(경종 3).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양주(楊州). 자는 덕수(德叟), 호는 소헌(素軒)하곡(霞谷). 형조판서 조계원(趙啓遠)의 손자로, 우의정 조사석(趙師錫)의 아들이다.

조태채(趙泰采)조태억(趙泰億)의 종형이다.

1683년(숙종 9)에 생원이 되고 1686년 별시문과에 종제 태채와 함께 병과로 급제, 설서문학승지를 거쳐, 1702년 충청도관찰사로 나갔다가 1705년 형조참의대사성을 지냈다.

그뒤 우참찬에 오르고, 1720년(경종 즉위) 복상(卜相) 때에 우의정에 올랐다. 당시 영의정김창집(金昌集), 좌의정이건명(李健命)이었다. 신임사화로 노론4대신을 사사(死賜)하게 한 뒤, 영의정에 올랐다.

1710년 동지사(冬至使)청나라에 다녀왔다. 당시 소론의 영수로서 노론과 대립하던 중 1721년 정언 이정소(李廷熽)의 건저상소(建儲上疏)와 김창집조태채이이명(李頤命)이건명 등 노론4대신의 주청에 의해 연잉군(延礽君: 뒤의 영조)이 세제(世弟)로 책봉되자, 유봉휘(柳鳳輝)로 하여금 반대의 소를 올리게 하고 세제의 대리청정이 실시되자 최석항(崔錫恒)조태억박태항(朴泰恒)이광좌(李光佐)한배하(韓配夏)이조(李肇) 등과 함께 이를 반대, 대리청정의 환수를 청하여 실현시켰다.

이어 같은해 12월 전승지 김일경(金一鏡)이진유(李眞儒)윤성시(尹聖時)박필몽(朴弼夢)서종하(徐宗廈)정해(鄭楷)이명의(李明誼) 등이 상소하여 건저(建儲)를 주장하던 노론 4대신을 4흉(凶)으로 몰아 탄핵한 뒤 결국 4대신의 사사(死賜)를 관철시키자, 영의정에 올라 소론정권을 수립하고, 최석항김일경 등과 국론을 주도하였다.

이후 소론은 과격파와 온건파로 나뉘어 정책결정에 논란이 많았는데, 그는 윤순(尹淳)과 함께 온건파의 주장이 되었다. 성격은 온아하고 위풍이 있었으며, 평소 검소한 생활을 하여 여러 번 외직에 나갔어도 재물이 쌓이지 않았다. 다만 강인한 성격이 못 되어 남의 부탁을 잘 받아들였기 때문에 잘 다스렸다는 치성(治聲)은 얻지 못하였다고 한다.

1725년(영조 1) 신임사화의 원흉으로 탄핵을 받고 관작이 추탈되었다. 글씨를 잘 썼으며, 산법(算法)에 관계되는 책을 펴냈는데 양전(量田) 등의 목적에 사용하기 위한 것이다.

편서로 『주서관견(籌書管見)』이 있고, 글씨로는 「이충무공고하도유허비(李忠武公高下島遺墟碑)」‧「왕자연령군명비(王子延齡君明碑)」‧「완산백조구석비(完山伯趙龜錫碑)」‧「길성군허유례비(吉城君許惟禮碑)」등이 있다. 1908년(순종 2)에 복관되었는데, 복관된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참고문헌]

肅宗實錄
國朝榜目
辛壬提要
昭代紀年
東國朋黨源流
燃藜室記述
黨議通略
淸選考
朝鮮金石總覽

[집필자]

김인걸(金仁杰)

명 : "태구(泰耇)"에 대한 용례

전거용례
國朝人物志v3旨而庭請前後傳旨則中外皆意其多出於慈旨故也是時備忘屢下盡逐士類三司合啓遠竄加律荐棘從兄泰耇自筵中來見泰采曰於宣仁門入對後謂我曰竊觀上顏色甚欲言以畏老論不敢今則兄獨入侍不知有酬酌
國朝人物志v3聯箚爲大案先荐棘諸相名以唯諾一幷削黜諸宰而獨漏相琦名相琦陳疏自首上批以勿辭保護東宮泰耇與朴弼夢等繼請竄配相琦于康津時大獄起魚肉搢紳貳極有朝夕凜凜之憂相琦恫念王室悲不能自
國朝人物志v3配甲山荐棘拓基配東萊赴謫閉戶讀易四年如一日乙巳改紀宥還除大司諫上疏言鳳輝泰耇□追奪官爵尹心衡成震齡等言陽來引避不可無罰請罷出補寧越府使尋投紱歸戊申亂起拜
國朝人物志v3癸亥生員丙寅文科與從弟泰采同榜歷副提學六曹判書庚子拜右議政至領議政辛丑建儲時泰耇聞李頤命等四大臣聯箚蒼黃入京自宣仁門請對參贊崔錫恒李光佐李肇韓配夏
國朝人物志v3粤我大行大王以不世出之英姿學問夙成不幸中年寢膳起居屢至愆常托殿下以嗣位代理一種諸人自生疑怯泰耇不由臺啓冒入闕內輒以宗社將亡爲言臣以爲未知左右用事則宗社可安世弟代理則宗社將亡乎及至逆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2010-05-24일성록 1908년 4월 30일조를 참고하여 복권 사실과 시호 문정(文貞) 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