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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석항(崔錫恒)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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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여구(汝久)
호(號)손와(損窩)
생년1654(효종 5)
졸년1724(경종 4)
시대조선중기
본관전주(全州)
활동분야문신 > 문신
최후량(崔後亮)
생부최후원(崔後遠)
조부최기남(崔起南)
저서『손와유고』

[상세내용]

최석항(崔錫恒)
1654년(효종 5)∼1724년(경종 4).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여구(汝久), 호는 손와(損窩).

영흥부사 최기남(崔起南)의 증손으로, 최후원(崔後遠)의 아들이며, 최후량(崔後亮)에게 입양되었다. 영의정 최석정(崔錫鼎)의 아우이다.

1678년(숙종 4) 진사가 되고 1680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예문관검열이 되었다. 몸집이 작고 차림이 초라하였으나, 사리판단이 정확하여 경상도관찰사로 있을 때는 전국의 관찰사 중 제일이라는 평판을 들었다.

1721년(경종 1)부터 2년에 걸친 이른바 신임사화에서 소론이 승리하는 데에 큰 구실을 하였다.

1721년 10월 왕세제(王世弟: 뒤의 영조) 대리청정의 지시가 내렸을 당시 좌참찬으로서 왕을 만나 그 부당성을 지적하여 그것을 철회시키기도 하였다. 이조판서를 거쳐 좌의정에 이르렀고, 나이 70이 되어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다. 당시 소론 4대신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혔는데, 이러한 당색 때문에, 영조가 즉위한 뒤 관작이 추탈되었다. 저서로는 『손와유고』 13권이 있다. 1908년(순종 2)에 복관되었는데, 복관된 시호는 충간(忠簡)이다.

[참고문헌]

肅宗實錄
景宗實錄
國朝榜目
朝鮮名臣錄
相臣錄

[집필자]

이겸주(李謙周)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2010-05-24일성록 1908년 4월 30일조를 참고하여 복권 사실과 시호 충간(忠簡) 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