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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필몽(朴弼夢)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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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양경(良卿)
생년1668(현종 9)
졸년1728(영조 4)
시대조선중기
본관반남(潘南)
활동분야변란 > 반역자
박태진(朴泰進)

[상세내용]

박필몽(朴弼夢)
1668년(현종 9)∼1728년(영조 4). 조선 후기의 역신(逆臣).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양경(良卿).

박태진(朴泰進)의 아들이다.

1710년(숙종 36)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검열이 되고, 이후 사서정언을 거쳤다.

1716년 이른바 병신처분(丙申處分)으로 소론이 노론에 의하여 밀려날 때 지평에서 경성판관(鏡城判官)으로 좌천되었다.

그뒤 소론 중의 준소계열(峻少系列)의 주요인물로 활약하였다.

1721년(경종 1) 김일경(金一鏡)이명의(李明誼)이진유(李眞儒) 등과 함께 상소하여, 왕세제(王世弟: 후의 영조)의 대리청정을 주장한 노론4대신의 죄를 성토함으로써 신임옥사를 일으켰다.

그뒤 소론정권이 수립되자 지평헌납광주부윤부제학승지대사성이조참의를 거쳐 참찬이 되었다.

1723년 강화유수가 되었는데, 이듬해 관병(觀兵)의 제도를 부활하자고 건의하여 허락을 얻었다.

1724년 영조가 즉위한 뒤 도승지가 되었으나 실록청(實錄廳)에 사사로이 출입한다고 사헌부의 탄핵을 받았으며, 이어 노론의 공격을 받고 갑산(甲山)에 유배되었다.

1728년(영조 4) 소론 급진파인 이인좌(李麟佐)청주에서 난을 일으키자 유배지에서 나와, 반란에 가담한 태인현감 박필현(朴弼顯)의 군중으로 가 서울로 진군하려 하였으나 도중에 반란이 진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죽도(竹島)에 숨었으며, 검모포(黔毛浦)로 가 잔당들과 다시 거사하려다가 무장현감 김몽좌(金夢佐)에게 붙잡혔다. 서울로 압송되어 능지처참당하였고, 그 가문은 몰락하였다.

[참고문헌]

肅宗實錄
景宗實錄
英祖實錄
勘亂錄
闡義昭鑑

[집필자]

김용조(金容祚)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