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룡(金致龍)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AE40CE58B8E1B1654X0 |
자(字) | 천용(天用) |
생년 | 1654(효종 5) |
졸년 | 1724(경종 4)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언양(彦陽)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김남갑(金南甲) |
외조부 | 홍득일(洪得一) |
[관련정보]
[상세내용]
김치룡(金致龍)
1654년(효종 5)∼1724년(경종 4).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언양(彦陽). 자는 천용(天用).
부친은 문경현감 김남갑(金南甲)이며, 모친은 관찰사 홍득일(洪得一)의 딸이다.
1675년(숙종 1) 생원‧진사에 모두 합격하고, 1691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소론에 속하였기 때문에 남인들이 집권하던 당시 별로 뚜렷한 벼슬을 하지 못하다가, 1694년 이후 가주서(假注書)부터 시작하여 전적‧감찰‧예조정랑‧병조정랑을 지내고, 정언이 되었을 때는 호서지방의 군전(軍田)에 대한 폐해를 상소하였다.
1677년 지평에 이어 문학‧장령‧군자감정‧봉상시정‧사서 등을 거쳐, 1703년 필선(弼善)이 되고 사복시정‧헌납‧사간‧집의‧사성‧보덕‧동부승지‧병조참의‧호조참의‧예조참의‧병조참판‧동지의금부사‧공조참판 겸 부총관 등을 지냈다.
외직으로는 안주부사‧의주부윤‧광주부윤‧강원도관찰사‧풍덕부사‧안변부사 등을 지냈다.
1708년 동지부사를 거쳐 1711년 강원도관찰사가 되고, 1721년(경종 1) 사은부사로 청나라에 다녀온 뒤 승지가 되었다.
성품은 단아하고 서(書)‧사(史)에 몰두하였으며 일처리에 민첩하였다. 내직과 외직을 역임할 때 많은 업적이 있었는데, 특히 외직으로 나갔을 때는 선정을 베풀어 그곳 주민들과 조정으로부터 칭송을 받았다.
부친은 문경현감 김남갑(金南甲)이며, 모친은 관찰사 홍득일(洪得一)의 딸이다.
1675년(숙종 1) 생원‧진사에 모두 합격하고, 1691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소론에 속하였기 때문에 남인들이 집권하던 당시 별로 뚜렷한 벼슬을 하지 못하다가, 1694년 이후 가주서(假注書)부터 시작하여 전적‧감찰‧예조정랑‧병조정랑을 지내고, 정언이 되었을 때는 호서지방의 군전(軍田)에 대한 폐해를 상소하였다.
1677년 지평에 이어 문학‧장령‧군자감정‧봉상시정‧사서 등을 거쳐, 1703년 필선(弼善)이 되고 사복시정‧헌납‧사간‧집의‧사성‧보덕‧동부승지‧병조참의‧호조참의‧예조참의‧병조참판‧동지의금부사‧공조참판 겸 부총관 등을 지냈다.
외직으로는 안주부사‧의주부윤‧광주부윤‧강원도관찰사‧풍덕부사‧안변부사 등을 지냈다.
1708년 동지부사를 거쳐 1711년 강원도관찰사가 되고, 1721년(경종 1) 사은부사로 청나라에 다녀온 뒤 승지가 되었다.
성품은 단아하고 서(書)‧사(史)에 몰두하였으며 일처리에 민첩하였다. 내직과 외직을 역임할 때 많은 업적이 있었는데, 특히 외직으로 나갔을 때는 선정을 베풀어 그곳 주민들과 조정으로부터 칭송을 받았다.
[참고문헌]
肅宗實錄
景宗實錄
國朝榜目
耳溪集
景宗實錄
國朝榜目
耳溪集
[집필자]
박정자(朴定子)
대표명 | 김치룡(金致龍) |
성명 | 김치룡(金致龍) |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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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