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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상(李師尙)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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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성망(聖望)
생년1656(효종 1)
졸년1725(영조 1)
시대조선중기
본관전주(全州)
활동분야문신 > 문신
이하(李夏)
조부이유담(李維聃)
외조부민광윤(閔光尹)

[상세내용]

이사상(李師尙)
1656년(효종 1)∼1725년(영조 1).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성망(聖望). 이유담(李維聃)의 손자로 도승지 이하(李夏)의 아들이며, 모친은 민광윤(閔光尹)의 딸이다.

1689년(숙종 15) 통덕으로 증광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홍문관에 들어갔다.

1693년 문학지평수찬교리, 의정부사인 등을 두루 역임하였다.

1704년 소론으로 그의 활동이 두드러지자 노론의 대직으로부터 논핵을 받았다.

1707년 부응교로 있으면서 문과중시에 을과로 다시 급제한 뒤 집의를 거쳐, 광주부윤(廣州府尹)을 지내는 동안 소론인 김일경(金一鏡) 등과 교유하였다.

그뒤 1709년 동부승지를 거쳐 경상도관찰사로 나갔으며, 1711년 노론이 정권을 잡고 있는 때라 또다시 대간으로부터 탄핵을 받아 유배당하는 정치적 고초를 겪다가 풀려나와 1721년(경종 1) 전라도관찰사로 부임하였다.

이듬해는 중앙으로 돌아와 대사간이 되었으며, 같은해 3월에 목호룡(睦虎龍)의 고변에 따라 이이명(李頤命)김창집(金昌集)이건명(李健命)조태채(趙泰采) 등 노론 4대신(老論四大臣)의 처단을 강력히 주장하고, 경종 시해를 모의하였다는 노론들을 일망타진한 신임사화에 큰 역할을 하였다.

이때부터 그는 소론 중에서 준소(峻少)계열로 활약하면서 대사성동지의금부사(同知義禁府事)도승지 등을 지내고, 1723년에는 예조참판이조참판대사헌부제학 등을 역임한 뒤 영조가 즉위하자 자헌대부(資憲大夫)에 승품되었다.

1725년 신임사화의 주동인물에 대한 삭탈관직의 주장이 일어나고, 노론들의 일대 반격이 가해짐에 따라 탄핵을 받아 절도에 안치되었다가 김일경목호룡과 함께 사형당하고, 부사공신녹권(扶社功臣錄券)도 위훈(僞勳)이라 하여 삭탈되었다.

그가 지은 경종의 시책문(諡冊文)이 『의릉지장(懿陵誌狀)』에 실려 있다.

[참고문헌]

肅宗實錄
景宗實錄
英祖實錄
國朝人物志
國朝榜目
燃藜室記述
淸選考

[집필자]

오갑균(吳甲均)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