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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난종(鄭蘭宗)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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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국형(國馨)
호(號)허백당(虛白堂)
시호(諡號)익혜(翼惠)
생년1433(세종 15)
졸년1489(성종 20)
시대조선전기
본관동래(東萊)
활동분야관료 > 명신
정사(鄭賜)
공신호순성좌리공신(純誠佐理功臣)

[상세내용]

정난종(鄭蘭宗)
1433년(세종 15)∼1489년(성종 20). 조선 전기의 명신‧서예가.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국형(國馨), 호는 허백당(虛白堂). 진주목사 정사(鄭賜)의 아들이다.

1456년 생원‧진사시와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부정자를 거쳐 검열대교통례문봉례랑(通禮門奉禮郞)이조좌랑 등을 역임하였다.

1463년 시강원문학을 거쳐 예조정랑종부시소윤(宗簿寺少尹)을 지내고, 1466년 문과중시에 급제하여 동부승지가 되었다. 이어 좌부승지예조참판을 지낸 뒤 형조참판으로 오위장을 겸하였다.

1467년 황해도관찰사이시애(李施愛)의 난 평정에 공을 세우고 이듬해 호조참판에 전임되었다.

1469년 동지춘추관사『세조실록』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1470년 동지중추부사로서 사은부사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온 뒤 1471년 순성좌리공신(純誠佐理功臣)에 올라 동래군(東萊君)에 봉하여졌고, 『예종실록』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그뒤 영안도관찰사호조참판한성부판윤전라도관찰사를 지냈다.

1483년 주문부사(奏聞副使)로 재차 명나라에 다녀온 뒤 평안도병마절도사우참찬이조판서공조판서호조판서를 역임하였다.

그는 훈구파의 중진으로 성리학에 밝았고, 서예에도 일가를 이루어 초서와 예서를 잘 썼으며, 특히 조맹부체(趙孟頫體)에 뛰어났다.

성임(成任)과 함께 세조성종대의 일류 서예가로, 1465년(세조 11)에 『원각경(圓覺經)』을 인쇄하기 위하여 그에게 주자체(鑄字體)를 쓰도록 하였는데, 이 활자가 을유자(乙酉字)이다. 성현(成俔)『용재총화』에서 “정난종이 쓴 창덕궁 전문(殿門)들의 액(額)은 자체가 바르지 않다.”, “『원각경』의 자체가 고르기 않다.”고 혹평하기도 하였다.

금석문에도 그의 필적이 적지 않다. 석문으로 서울 파고다공원의 「원각사비음(圓覺寺碑陰)」, 양주의 「고령부원군신숙주묘표(高靈府院君申叔舟墓表)」‧「윤자운신도비(尹子雲神道碑)」‧「윤자운묘표」, 연산(連山)의 「김철산비(金鐵山碑)」가 있으며, 금문으로 양양의 「낙산사종명(洛山寺鐘銘)」, 고성의 「유점사종명(楡岾寺鐘銘)」, 양주의 「봉선사종명(奉先寺鐘銘)」, 덕수궁의 「흥천사종명(興天寺鐘銘)」이 있다.

진적이 보기 드물며, 『관란정첩(觀瀾亭帖)』『해동명적(海東名跡)』『대동서법(大東書法)』 등에 그의 글씨가 모각되어 있다. 시호는 익혜(翼惠)이다.

[참고문헌]

成宗實錄
國朝人物考
海東金石苑 卷五
朝鮮金石總覽 下
槿域書畵徵
韓國金石遺文(黃壽永, 一志社, 1976)
韓國古印刷文化史(金斗鍾, 三星美術文化財團, 1980)

[집필자]

이완우(李完雨)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