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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광(任絖)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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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자정(子瀞)
호(號)삼휴(三休)
시호(諡號)충간(忠簡)
생년1579(선조 12)
졸년1644(인조 22)
시대조선중기
본관풍천(豊川)
활동분야문신 > 문신
임익신(任翊臣)

[상세내용]

임광(任絖)
1579년(선조 12)∼1644년(인조 22).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자정(子瀞), 호는 삼휴(三休).

사헌부감찰 임익신(任翊臣)의 아들이다.

1609년(광해군 1) 사마시에 합격한 뒤 성균관에 들어가 재사(才士)로서 이름을 떨쳤으나, 정치가 어지러움을 보고 낙향하여 공직에 나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1623년 인조반정 후 순릉참봉이 되었다가 이듬해 별시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여 풍저창직장(豊儲倉直長)을 거쳐 승정원주서성균관전적호조낭관병조낭관을 지내고, 1628년(인조 6) 정언, 1632년 지평을 지냈으며, 지방수령으로 나가 함종현령영광군수를 지냈다. 다시 중앙관직에 돌아와 홍문관수찬사헌부장령필선이 되고 암행어사평안도 지방에 내려가 지방행정을 바로잡았다.

또, 균전사(均田使)가 되어 영남지방을 돌아보고 토지행정을 바로 잡았다. 첨지중추부사로서 통신사가 되어 일본에 다녀왔으며, 그뒤 좌승지한성우윤이 되었다. 그때 남쪽지방에 소요가 있었으므로 삼남주사검찰사(三南舟師檢察使)가 되어 삼도수군을 순찰하고 돌아와 형조참판이 되고 오위도총부부총관을 겸하였다.

충주목사안동부사를 거쳐 1642년 황해도관찰사동지중추부사도승지를 지내고, 이듬해 좌부빈객(左副賓客)으로 김육(金堉)과 함께 심양(瀋陽)에 볼모로 잡혀간 소현세자(昭顯世子)가 환국하게 되었을 때 이들을 수행하기 위하여 청나라에 갔다가 그곳에서 죽었다. 좌의정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충간(忠簡)이다.

[참고문헌]

宣祖實錄
仁祖實錄
承政院日記
通文館志
國朝榜目
國朝人物考

[집필자]

이정일(李貞一)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