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치검색 표제어 전체
검색
서헌순(徐憲淳)

[요약정보]

UCIG002+AKS-KHF_13C11CD5CCC21CB1801X0
자(字)치장(穉章)
호(號)석운(石耘)
시호(諡號)효문(孝文)
생년1801(순조 1)
졸년1868(고종 5)
시대조선후기
본관대구(大丘)
활동분야문신 > 문신
서기보(徐基輔)

[상세내용]

서헌순(徐憲淳)
1801년(순조 1)∼1868년(고종 5).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대구(大丘). 자는 치장(穉章), 호는 석운(石耘).

진사 서기보(徐基輔)의 아들이다.

1829년(순조 29)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1844년(헌종 10) 성균관대사성에 취임하였고, 3년 후 관북지방에 흉년이 들자 구제사업을 위하여 파견되었으며, 1850년(철종 1) 사은부사(謝恩副使)청나라에 다녀왔다.

이어 호군(護軍)공조판서형조판서를 거쳐 1854년 전라도관찰사가 되었고, 2년 후에는 예조판서, 1857년 이후에는 한성부판윤형조판서사헌부대사헌, 다시 형조판서공조판서를 역임하였다.

1862년 사은정사(謝恩正使)가 되어 청나라에 다녀왔다. 이해에 경상도관찰사가 되었는데, 동학교조 최제우(崔濟愚)와 교도 20여명을 붙잡아 의정부의 지시방침에 따라 처형 또는 처벌하였다. 그뒤 판의금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정사를 다스림에 청렴결백하며, 일의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하는 재주가 신과 같았다.

예문관제학과 여러 아문의 제조(提調)를 지내고, 1867년(고종 4) 휴가를 청하여 공주의 자운동(紫雲洞)에 은퇴하였다.

이듬해 이조판서를 제수하였으나 병으로 사양하고 그해에 죽었다.

[참고문헌]

純祖實錄
憲宗實錄
哲宗實錄

[집필자]

이재호(李載琥)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2010-03-29고종실록 1875년 12월 16일조를 참고하여 시호 효문(孝文) 추가.
2011-01-03문과방목과 大丘徐氏世譜(2003년 간행)를 참고하여 본관을 달성(達城)에서 대구(大丘)로 수정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