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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모(李秉模)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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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이칙(彛則)
호(號)정수재(靜修齋)
시호(諡號)문익(文翼)
생년1742(영조 18)
졸년1806(순조 6)
시대조선후기
본관덕수(德水)
활동분야문신 > 문신
이연(李演)
고조부이단하(李端夏)

[상세내용]

이병모(李秉模)
1742년(영조 18)∼1806년(순조 6).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이칙(彛則), 호는 정수재(靜修齋).

이단하(李端夏)의 현손이며, 이연(李演)의 아들이다.

1773년(영조 49) 진사시를 거쳐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당시 영의정 한익모(韓翼謨)의 주청으로 6품에 올랐다.

경기지방관동지방을 암행하고, 1776년 정조가 즉위하자 김상로(金尙魯)의 죄를 탄핵하였다. 이조좌랑대사간예조참의를 거쳐 이조참의에 임명되었으나, 1779년(정조 3) 운산에 유배되고, 1781년에는 사판(仕版)에서 제명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곧 특서(特敍)되어 국조보감찬집당상(國朝寶鑑纂輯堂上)우부승지동래부사대사간 등을 거쳐 경상도관찰사로 재임중인 1784년에 『돈효록(敦孝錄)』을 간행하였다.

이어 대사성이조참판예조판서형조판서호조판서병조판서예문관제학홍문관제학함경도관찰사평안도관찰사 등을 거쳐 1794년 우의정에 임명되고, 좌의정을 거쳐 1799년 영의정이 되었다.

그동안 1778년 동지부사(冬至副使), 1795년 진하사(進賀使) 등으로 중국에 다녀왔으며, 1800년에도 책봉주청사(冊封奏請使)로 사행(使行) 중에 정조의 상을 당하였다.

순조가 즉위하자 실록총재관에 임명되고, 1803년(순조 3)다시 영의정에 임명되었다. 시호는 문익(文翼)이다.

[참고문헌]

英祖實錄
正祖實錄
純祖實錄
國朝榜目

[집필자]

전형택(全炯澤)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