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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리(趙明履)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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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중례(仲禮)
호(號)도천(道川)
시호(諡號)문헌(文憲)
생년1697(숙종 23)
졸년1756(영조 32)
시대조선중기
본관임천(林川)
활동분야문신 > 문신
조정서(趙正緖)
조부조현기(趙顯期)
저서『도천집』

[상세내용]

조명리(趙明履)
1697년(숙종 23)∼1756년(영조 32).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임천(林川). 자는 중례(仲禮), 호는 노강(蘆江)도천(道川). 부사 조현기(趙顯期)의 손자로, 조정서(趙正緖)의 아들이다.

1730년(영조 6) 사마시에 합격하여 교관(敎官)으로 있다가 이듬해 정시문과(庭試文科)에 을과로 급제, 봉교정언을 거쳐 1734년 지평이 되었다. 정언으로 있을 때 왕이 시정하여야 할 3개조의 치민책(治民策)을 영조에게 올려 가납(嘉納)되었다.

1735년 지평 이태중(李台重)이 왕의 미움을 사 유배당한 사건이 발생하자, 일찍이 그를 한림직(翰林職)에 추천한 사실이 있었다 하여 함께 삭직되었다.

그뒤 교리로 복직되었다가 소론 이광좌(李光佐)의 당으로 지목되어 2년간의 유배생활을 보냈다.

1740년 다시 기용되어 동부승지의주부윤대사성을 거쳐, 1746년 부제학에 올랐다.

이때 『광묘어제훈사(光廟御製訓辭)』를 찬집한 공으로 가선대부(嘉善大夫)에 가자되고, 이어 동의금부사를 지냈으며, 도승지이조참판강원도관찰사대사헌을 역임한 뒤 1755년 판윤으로 승진하였다.

이때 왕명에 의하여 『천의소감(闡義昭鑑)』이 편찬될 때 찬집당상으로 참여하였다.

문장과 글씨에 뛰어났으며, 문집으로 『도천집』이 있다. 시호는 문헌(文憲)이다.

[참고문헌]

英祖實錄
國朝榜目
淸選考
道川集

[집필자]

조원래(趙湲來)
대표명조명리(趙明履)
명리(明履)
성명조명리(趙明履)

명 : "명리(明履)"에 대한 용례

전거용례
入耆社謄錄v1於先生案矣上曰跋文冊已有予之名矣明履曰三駙馬今始入來矣上曰使之肅拜可也上曰前已議之而先生案果書年月矣明履曰御帖奉審後可以知之矣宗城曰禮節可以擧行耶上曰今見跋文冊有覺悟之事還後可以下敎矣上曰告廟之禮已行之乎
入耆社謄錄v1于案上上親書御帖訖明履曰使入侍大臣奉審何如上曰以次入見可也奉審畢明履納櫃中入安于龕內宗城跪而進几以授明履履受以授內侍上曰內侍受之似如何矣此古例耶明履曰儀節然矣上曰予受之而授內侍似可矣明履跪而進杖上親自受之
入耆社謄錄v1事申思喆曰其時臣以該房承旨入侍而見之矣在魯曰一張列書初謂無妨而他張各書亦好矣上曰御帖櫃承旨奉出而開之明履奉櫃置于上前而開之仍出御帖安于案上上親書御帖訖明履曰使入侍大臣奉審何如上曰以次入見可也奉審畢明履納櫃
入耆社謄錄v1書初謂無妨而他張各書亦好矣上曰御帖櫃承旨奉出而開之明履奉櫃置于上前而開之仍出御帖安于案上上親書御帖訖明履曰使入侍大臣奉審何如上曰以次入見可也奉審畢明履納櫃中入安于龕內宗城跪而進几以授明履履受以授內侍上曰內
入耆社謄錄v1又曰先生案序何人之文耶宗城曰沈喜壽金堉矣上曰先生案有其名耶宗城曰皆入於先生案矣上曰跋文冊已有予之名矣明履曰三駙馬今始入來矣上曰使之肅拜可也上曰前已議之而先生案果書年月矣明履曰御帖奉審後可以知之矣宗城曰禮節
入耆社謄錄v1曰以次入見可也奉審畢明履納櫃中入安于龕內宗城跪而進几以授明履履受以授內侍上曰內侍受之似如何矣此古例耶明履曰儀節然矣上曰予受之而授內侍似可矣明履跪而進杖上親自受之以授內侍仍命耆堂閉龕門通禮告禮畢上曰行禮罷後
入耆社謄錄v1內宗城跪而進几以授明履履受以授內侍上曰內侍受之似如何矣此古例耶明履曰儀節然矣上曰予受之而授內侍似可矣明履跪而進杖上親自受之以授內侍仍命耆堂閉龕門通禮告禮畢上曰行禮罷後耆老諸臣及時原任大臣入侍于幕次事分付上
入耆社謄錄v1開之明履奉櫃置于上前而開之仍出御帖安于案上上親書御帖訖明履曰使入侍大臣奉審何如上曰以次入見可也奉審畢明履納櫃中入安于龕內宗城跪而進几以授明履履受以授內侍上曰內侍受之似如何矣此古例耶明履曰儀節然矣上曰予受之
入耆社謄錄v1禮時下敎曰三駙馬從後一齊入參之意分付上行四拜禮訖陞御閣內王世子從陞上曰筆硯之具持來耶宗城曰已爲待令矣明履奉跋文冊進之上曰敎文言之而跋文亦有白居易事矣又曰先生案序何人之文耶宗城曰沈喜壽金堉矣上曰先生案有其名
入耆社謄錄v1命則全不視物雖左右挾扶無可入之路云矣上曰各司先生案皆有跋文乎領議政金在魯曰皆有之矣上曰各司皆有先生乎明履曰或有之矣上曰草本一件所書者進之上曰以一張列書耶以他張各書耶欲議之矣領府事徐命均曰何必以各張書之耶上
入耆社謄錄v1顧聖龍曰卿則敎子不善矣聖龍起伏曰聞此下敎不勝惶恐矣酒三行上製下詩一句命諸臣各以一句賡進曰在座者幾人乎明履曰九人矣上曰然則可爲十韻排律矣良久命諸臣齊告其所賡詩諸臣讀告訖上曰下此銀甁竝與所盛之酒而持去可也己亥
入耆社謄錄v1九十二歲耆臣及九十一歲都尉入參豈不貴乎陽來曰宰臣中李承源八十四歲安重弼八十六歲此兩人似有國家之特恩矣明履進曰凡係特恩之事卽大臣所達而重臣如是仰請雖是耆老之臣宜有推考警責之道矣上曰樸實矣仍謂陽來曰卿每以老病
入耆社謄錄v1入耆社於甲子之歲雖近於漢儒之傳會而豈不異乎耆臣以次起退上謂震箕曰卿可少留聞卿爲太祖十世孫云尤可貴矣命明履書傳敎曰今者之事追踵我太祖故事而爲太祖朝十代孫者同在耆府可謂稀有漢文云老者非肉不飽非帛不煖況尙齒耆社
入耆社謄錄v1至于靈壽閣者欲使聞於予耳者達于靈壽閣也禮房必須領往而都監堂上在後諸耆老之臣在後處容及舞童在前而去可也明履曰聞於典樂己亥年例鄕唐樂隨往矣上曰今亦依此爲之頒賜御饌恐先去分付該曹留置同往架子擔去可也李宗城進曰日
入耆社謄錄v1臣聞權樀請往而不許云矣上嘆曰此似是非先生勿許之意也樘及明履曰然矣上曰今番進宴雖爲之減省而器數則不減耶明履曰大卓大小膳雖減而味數則不減矣上曰比前存減之數承旨知之乎明履曰臣不能詳知矣上曰今此之擧奉歡東朝小伸予
入耆社謄錄v1己亥年前例亦有之耶右承旨趙明履曰然矣上曰處容及舞童皆使前導而歸耶洛昌君樘曰似然矣上曰賜饌亦在前而去耶明履曰然矣上曰宗親府賜饌亦前導而歸耶洛昌君樘曰然矣上曰耆社老臣設宴時亦請賓云耶明履曰臣聞權樀請往而不許云
入耆社謄錄v1昌君樘曰然矣上曰耆社老臣設宴時亦請賓云耶明履曰臣聞權樀請往而不許云矣上嘆曰此似是非先生勿許之意也樘及明履曰然矣上曰今番進宴雖爲之減省而器數則不減耶明履曰大卓大小膳雖減而味數則不減矣上曰比前存減之數承旨知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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