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치검색 표제어 전체
검색
권우(權堣)

[요약정보]

UCIG002+AKS-KHF_12AD8CC6B0FFFFB1610X0
자(字)자명(子明)
호(號)동곡(東谷)
생년1610(광해군 2)
졸년1675(숙종 1)
시대조선중기
본관안동(安東)
활동분야문신 > 문신
권확(權鑊)

[상세내용]

권우(權堣)
1610년(광해군 2)∼1675년(숙종 1).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자명(子明), 호는 동곡(東谷). 권확(權鑊)의 아들이다.

1629년(인조 7)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검열주서봉교를 거쳐, 1636년 부수찬이 되었다.

그뒤 지평교리정언 등 청환직(淸宦職)을 역임하였다.

1650년(효종 1) 홍문관응교로서 『인조실록』의 편찬에 참여하였으며, 사인집의보덕사간을 거쳐, 1651년 사은사(謝恩使)서장관으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1654년 경상도관찰사로 나가 경상도의 속오급보법(束伍給保法)을 정하도록 요청하였다.

이듬해 충청도관찰사, 1657년부터 1659년까지 대사간전라도관찰사함경도병마절도사함경도관찰사 등 외관을 지내면서, 지방 민정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데 노력하였다.

즉, 함경도병마절도사를 지낼 때는 북로소복책(北路蘇復策)을 진언하기도 하였다.

1662년(현종 3)에는 내관으로 들어와 예조참판이 되었고, 이듬해에 도승지강화유수가 되었으나 사헌부의 탄핵을 받아 파직당하였다.

1665년에 다시 기용되어 장악원정(掌樂院正)이 되었는데, 이때 그는 묘악(廟樂)을 정리하도록 지시하여 음률의 체제를 정비하는 데 힘썼다.

1668년에 부호군(副護軍), 1671년에 판결사(判決事), 이듬해 한성부좌윤을 거쳐 1674년 사은사 김수항(金壽恒)부사청나라에 다녀왔다.

1685년(숙종 11) 정제선(鄭濟先)이 봉명살인(奉命殺人)한 것에 관련되어 강진에 유배되었다가 그곳에서 죽었다.

[참고문헌]

仁祖實錄
孝宗實錄
顯宗實錄
肅宗實錄

[집필자]

김동수(金東洙)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