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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순지(尹順之)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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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낙천(樂天)
호(號)행명(涬溟)
생년1591(선조 24)
졸년1666(현종 7)
시대조선중기
본관해평(海平)
활동분야문신 > 문신
윤훤(尹暄)
청송심씨(靑松沈氏)
조부윤두수(尹斗壽)
외조부심의겸(沈義謙)
저서『행명집』

[상세내용]

윤순지(尹順之)
1591년(선조 24)∼1666년(현종 7).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해평(海平). 자는 낙천(樂天), 호는 행명(涬溟).

윤두수(尹斗壽)의 손자이며, 관찰사 윤훤(尹暄)의 아들이고, 모친은 청송심씨(靑松沈氏)대사헌 심의겸(沈義謙)의 딸이다.

1612년(광해군 4) 사마시를 거쳐 1620년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예문관검열언관 등을 역임하였다. 인조초에 경연관(經筵官)이 되고, 1627년(인조 5) 정묘호란 때 아버지가 평안도관찰사로서 적의 침입을 막지 못한 죄로 사사(賜死)되자 10년 동안 은거하였다.

1629년 홍문관부교리에 다시 등용되고, 1636년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이 적에게 포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사잇길로 성중에 들어가 왕을 호종(扈從)하였다. 환도 후 형조참의가 되고 1643년 통신사일본에 다녀왔으며, 부사연경(燕京)에 다녀왔다.

1654년(효종 5) 경기도 관찰사로 재직할 때 소송사건을 빨리 처리하지 않아 민원을 사서 유배되었다. 뒤에 풀려나, 1657년 실록수정청당상(實錄修正廳堂上)이 되어 『선조수정실록』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도승지육조참판개성유수한성판윤대제학을 거쳐, 1663년 공조판서좌참찬 등을 역임하였다. 종조(從祖) 윤근수(尹根壽)에게 학문을 배웠으며, 시(詩)‧사(史)‧서(書)‧율(律)에도 뛰어났다.

겸손하고 근면하였으며 몸가짐이 단정하고 돈후하여 아버지의 전화(前禍)를 항상 잊지 않았다. 왕의 잘못이 있더라도 직언은 하지 않았으며 조정에 있어서도 객처럼 처신하였다.

저서로는 『행명집』이 있다.

[참고문헌]

仁祖實錄
孝宗實錄
顯宗實錄
國朝榜目
國朝人物考

[집필자]

조계찬(趙啓纘)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