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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장(任章)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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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자룡(子龍)
생년1568(선조 1)
졸년1619(광해군 11)
시대조선중기
본관풍천(豊川)
활동분야문신 > 문신
임영로(任榮老)
조부임열(任說)
증조부임명필(任明弼)
외조부심강(沈鋼)

[상세내용]

임장(任章)
1568년(선조 1)∼1619년(광해군 11).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자룡(子龍). 임명필(任明弼)의 증손으로, 조부는 판윤 임열(任說)이고, 부친은 종부시정 임영로(任榮老)이며, 모친은 청릉부원군 심강(沈鋼)의 딸이다. 임연(任兗)의 동생이다.

1591년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며, 1605년(선조 38)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시강원설서가 되었다. 그 뒤 승정원주서예문관대교를 거쳐 형조좌랑정언을 지냈다. 선조의 재위 당시에는 형 임연과 함께 소북(小北) 중 남당(南黨)의 일원으로 인식되었다.

광해군의 즉위 직후 정언으로 광해군의 형인 임해군(臨海君)광해군의 즉위에 비판적인 유영경(柳永慶)을 탄핵하였다. 그 뒤 부수찬지평수찬 등을 역임한 뒤, 1610년(광해군 2) 헌납이 되었고, 이어 이조좌랑이조정랑 등 요직에 임명되었다.

『선조실록』의 편찬 때 편수관(編修官)으로 참여하였다. 그러나 당색이 다른 형제간의 알력 때문에 파직되었다가 다시 출사하였다. 1613년(광해군 5) 영창대군(永昌大君)을 옹립하려 한 혐의로 발생한 박응서(朴應犀) 옥사 사건에 관련되어 파직되었다.

이듬해에는 폐모살제(廢母殺弟:계모인 인목대비를 서궁에 유폐시키고, 이복동생 영창대군을 죽임)를 주장한 정조(鄭造)윤인(尹訒) 등을 귀양보내라는 정온(鄭蘊)의 상소에 관련되어 의금부의 추국을 받았다.

그 뒤 1618년(광해군 10)에 나주목사로 이명되었으나, 이듬해 임소(任所)에서 사망하였다. 인조반정 직후인 1623년(인조 1) 임해군의 치죄를 주장하였다는 것으로 파직, 불서용의 처벌을 받았다.

[참고문헌]

宣祖實錄
光海君日記
仁祖實錄
國朝榜目
燃藜室記述
大東野乘

[집필자]


수정일수정내역
2009-09-302009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