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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신(洪慶臣)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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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덕공(德公)
호(號)녹문(鹿門)
생년1557(명종 12)
졸년1623(인조 1)
시대조선중기
본관남양(南陽[土])
활동분야문신 > 문신
홍온(洪昷)

[상세내용]

홍경신(洪慶臣)
1557년(명종 12)∼1623년(인조 1).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남양(南陽[土]). 자는 덕공(德公), 호는 녹문(鹿門). 홍온(洪昷)의 아들이다.

내수사별제로 재직 중 1594년(선조 27)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이듬해 정자예문관검열부수찬세자시강원 겸 사서전적 등을 차례로 역임하였다.

이때 평안도의 수령을 다수 교체하였는데, 신임 수령으로서 병을 이유로 부임하지 않는 자가 있자 그는 추수기의 절박한 사정을 들어 이들을 치죄할 것을 상소하였다.

1596년 정언이 된 뒤 부교리교리이조좌랑지평이조정랑을 거쳐, 1598년 응교가 되었다.

이때 명나라 장수 진린(陳璘)접반사(接伴使)들이 접대를 이유로 열읍(列邑)으로부터 말과 각종 물품을 거두어들여 경의가도(京義街道)연변의 조폐(凋弊)가 심함을 들어 이들의 치죄를 상소하였다.

1600년 직강이 되었으며, 이어서 사인필선보덕을 거쳐 1603년 종부시정(宗簿寺正)직제학부제학이 되었고, 이듬해 부호군상호군을 차례로 역임한 뒤 1605년에는 병조참의가 되었으며, 이듬해 천추사(千秋使)명나라에 다녀왔다.

1607년 좌부승지가 되었는데 훈련도감 인근의 민가에 화재를 발견, 이를 즉시 진화하여 훈련도감과 화약고에 인화되는 것을 방지하였다.

1609년(광해군 1) 호조참의가 되었고, 이어 우승지대사성부평부사(富平府使)병조참의승지 등을 거쳐, 1623년 다시 부제학이 되었으나 그 첩에게 독살당하였다.

[참고문헌]

宣祖實錄
仁祖實錄
光海君日記
國朝榜目

[집필자]

문수홍(文守弘)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