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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성(許筬)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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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공언(功彦)
호(號)악록(岳麓)
호(號)산전(山前)
생년1548(명종 3)
졸년1612(광해군 4)
시대조선중기
본관양천(陽川)
활동분야문신 > 문신
허엽(許曄)
저서『악록집(岳麓集)』

[상세내용]

허성(許筬)
1548년(명종 3)∼1612년(광해군 4).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양천(陽川). 자는 공언(功彦), 호는 악록(岳麓)산전(山前).

허엽(許曄)의 아들이며, 허봉(許篈)허균(許筠)의 형이고, 난설헌(蘭雪軒)의 오빠이다.

당시 이름난 문장가였다. 유희춘(柳希春)의 문인이다.

1568년(선조 1) 생원이 되고, 1583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590년 전적(典籍)으로서 통신사(通信使)종사관(從事官)이 되어 일본에 다녀왔다. 이어 정언헌납이조좌랑응교사인집의를 거쳐, 1594년 이조참의로 승진되었으며, 이듬해 대사성대사간부제학을 역임하였다. 이어 이조참판을 지내고 전라도안찰사로 나갔다가 예조병조판서에 제수되었으며, 그뒤 이조판서에까지 이르렀다.

1607년 선조의 유교(遺敎)를 받게 되어 세인들이 고명칠신(顧命七臣)이라 칭하게 되었다. 선조대에 학문과 덕망으로 사림의 촉망을 받았으며, 성리학에 조예가 깊었고 글씨에도 뛰어났다. 찬성에 추증되었다.

저서로는 『악록집(岳麓集)』이 있다.

[참고문헌]

宣祖實錄
國朝榜目
國朝人物考
朝鮮金石攷(葛城末治, 國書刊行會, 1935)

[이미지]

[집필자]

이동길(李東吉)

명 : "성(筬)"에 대한 용례

전거용례
紀年便攷v3儲慶宫出○娶陽川許氏判書贈左䝺成
震乘總v5蓋誠一到彼憤允吉恇㤼故言言相左如此而柳成龍主誠一於是東西黨議表裡各護其類獨從事官許筬以爲倭必來當時以不護黨韙之宣慰使吳億齡問玄蘇蘇明言明年將大擧假道直犯上國億齡馳啓時議大駭遂遞爲質正官以擠之涪溪記聞曰
大東彙纂v13宣廟朝金晬判戶曹楊經理以餫餉不繼欲遞晬代以韓應寅承旨許筬請從鄭守夢曄曰官爵人主大柄不可以假人上如公議服公之見上同
大東彙纂v21而不爲動時訛言胥動謂將有抱繫之辱有來言者曰民部卿法邙山口殿玄亮乃關白之左右而今適主客可交懽以圖之允吉等欲托以禮幣而厚其賂公曰行之於傳命之後則爲禮物行之於今日則爲貨物行貨而媚竈辱命甚矣雖死不可爲也名臣錄
寒臯觀外史v67徳馨字明甫號漢隂廣州人官領相諡文翼誠一字士純號鶴峯義城人官嶺伯諡文忠字功彦號岳麓陽川人官吏判汝立字大甫東萊人官校理大逆軸字子任號沙村全州人官刑判諡安襄忠侃尙州人䕃戶判
國朝人物志v2禍每夜輒有哭聲大孚題詩石上曰不肖寧無子空山白骨寒精靈休夜哭金椀亦人間李福源黨源錄男篈筠
國朝人物志v2鶴齡豐川人承旨呂孫丙申文科監司同上許䙗字子賀號水色陽川人參奉昉子再從弟戊子進士丁酉文科判尹錄寧社功臣一等勳封陽陵君仁祖朝上疏請元宗追崇同
國朝人物志v2戊午謫泗川癸亥反正召以博士官至北評事人物考許字惟善號東岡判書子庚戌別試文科以讀券官筠姪臺啓削科白沙李恒福主試上箚直其冤不報時人爲之謠曰子壻弟侄侄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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