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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제(金允悌)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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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공로(恭老)
호(號)사촌(沙村)
생년1501(연산군 7)
졸년1572(선조 5)
시대조선전기
본관광산(光山)
활동분야관료
김후(金詡‧金珝)
여산김씨(礪山金氏)
조부김문손(金文孫)
증조부김자침(金自沈)

[상세내용]

김윤제(金允悌)
1501년(연산군 7)∼1572년(선조 5).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공로(恭老), 호는 사촌(沙村).

증조부는 김자침(金自沈), 조부는 김문손(金文孫), 부친은 김후(金詡‧金珝)이다. 모친은 여산김씨(礪山金氏)이다.

1528년(중종 23) 무자(戊子) 식년시(式年試) 진사(進士) 2등 7위에 합격하고, 1531년(중종 26) 신묘(辛卯) 식년시(式年試) 병과(丙科) 23위로 급제했다. 직강(直講)홍문관교리(弘文館敎理)전중어사 겸 춘추관 편수관(殿中御使 兼 春秋館 編修官)을 역임하였고, 전주진영 병마절도사(全州鎭營 兵馬節度使), 부안군수(扶安郡守), 나주목사(羅州牧使) 등 13개 고을의 지방관으로 나갔다. 나주목사로 있을 때, 기대승(奇大升)이 엮은 『주자문록(朱子文錄)』 4책을 간행하였다. 관직을 떠난 뒤 고향으로 돌아와 후학 양성을 하였는데, 송강(松江) 정철(鄭澈, 1536-1593)과 종질(從姪)인 서하당(棲霞堂) 김성원(金成遠) 등이 대표적인 제자이다.

그리고 “환벽당(環碧堂)”이라는 정자를 짓고는 술잔을 들고 시를 읊으며 스스로 즐겼는데, 당시 호남의 이름난 시인 묵객들이 찾아와 시단을 형성하였다. 김윤제(金允悌)가 교유한 사람들은 송순(宋純), 임억령(林億齡), 김인후(金麟厚), 소세양(蘇世讓), 양산보(梁山甫) 부자, 양응정(梁應鼎), 기대승, 김성원, 정철(鄭澈), 고경명(高敬命), 삼당시인으로 이름난 백광훈(白光勳) 등으로, 이들 대부분은 호남사림으로 기묘사화(己卯士禍)와 을사사화(乙巳士禍)를 거치면서 시대의식을 함께 했다.

[참고문헌]

『국조문과방목(國朝文科榜目)』(규장각[奎106])
『가정 7년 무자 2월 24일 생원진사 방목(嘉靖七年戊子二月二十四日生員進士榜目)』(국립중앙도서관[古6024-174])
朝鮮人名辭書

[집필자]

박경이
수정일수정내역
2008-12-312008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