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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세양(蘇世讓)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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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언겸(彦謙)
호(號)퇴재(退齋)
호(號)퇴휴당(退休堂)
시호(諡號)문정(文靖)
생년1486(성종 17)
졸년1562(명종 17)
시대조선전기
본관진주(晉州)
활동분야문신 > 문신
소자파(蘇自坡)
저서『양곡집(陽谷集)』

[상세내용]

소세양(蘇世讓)
1486년(성종 17)∼1562년(명종 17).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언겸(彦謙), 호는 양곡(陽谷)퇴재(退齋)퇴휴당(退休堂). 의빈부도사 소자파(蘇自坡)의 아들이다.

1504년(연산군 10) 진사시에 이어 1509년(중종 4)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정언을 거쳐 수찬에 재직시 단종의 어머니 현덕왕후(顯德王后)의 복위를 건의, 현릉(顯陵)에 이장하게 하였다.

1514년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했고, 후에 직제학을 거쳐 사성이 되었으며, 1521년 영접사(迎接使) 이행(李荇)종사관으로 명나라 사신을 맞았고, 그뒤 왕자사부(王子師傅) 등을 지냈다. 이어 전라도관찰사로 나갔으나, 1530년 왜구에 대한 방비를 소홀히 하였다 하여 파직되었다가 이듬해 다시 기용되어 형조판서 등을 거쳐 1533년 지중추부사에 올라 진하사(進賀使)명나라에 다녀왔다.

1537년 형조호조병조이조판서를 거쳐 우찬성이 되었고, 이듬해 성주사고(星州史庫)가 불타자 왕명에 따라 춘추관(春秋館)의 실록을 등사, 봉안하였다.

1545년(인종 1) 윤임(尹任)일파의 탄핵으로 사직하였고, 이해 명종이 즉위한 후 을사사화로 윤임 등이 몰락하자 재기용되어 좌찬성을 지내다가 사직하고 익산에 은퇴하였다.

문명이 높고 율시(律詩)에 뛰어났으며, 글씨는 송설체(松雪體)를 잘 썼다. 익산 화암서원(華巖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양곡집(陽谷集)』이 있으며, 글씨는 양주에 임참찬권비(任參贊權碑)와 소세량부인묘갈(蘇世良夫人墓碣)이 있다. 시호는 문정(文靖)이다.

[참고문헌]

中宗實錄
燕山君日記
國朝人物考
國朝榜目

[집필자]

이현희(李炫熙)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