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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감(李戡)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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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언신(彦信)
생년1516(중종 11)
졸년1583(선조 16)
시대조선전기
본관우계(羽溪)
활동분야문신 > 문신
이광식(李光軾)
외조부이세응(李世應)

[상세내용]

이감(李戡)
1516년(중종 11)~1583년(선조 16).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우계(羽溪). 자는 언신(彦信).

부친은 참판 이광식(李光軾)이며, 모친은 이세응(李世應)의 딸이다.

1543년(중종 38) 생원시에 합격하였고 그해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545년(명종 즉위) 예문관봉교로 있으면서 중국에 보내는 자문(咨文)의 글씨를 잘 써서 칭찬을 들었으며, 이어 정언이 되어 윤원형(尹元衡)윤춘년(尹春年)과 결탁, 사류를 공격하는 데 가담하였다.

이어 사헌부홍문관의 요직을 두루 거쳤으며, 특히 무재를 인정받아 1552년 함경도순변사 이준경(李浚慶)종사관(從事官)에 임명되기도 하였고, 종성부사로 변경수비를 맡기도 하였다.

1558년에는 성절사중국에 다녀오기도 하였으며 승지경상도관찰사 등을 역임하였다.

그뒤 윤원형을 견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량(李樑)이 중용되어 국정을 전단하자 시세에 좇아 그의 심복이 되었다. 이량의 후원하에 병조참판도승지형조참판 등 요직을 두루 거쳐 1563년 대사헌에 기용되었다.

이때 이량의 사주로 이문형(李文馨)허엽(許曄)기대승(奇大升)윤근수(尹根壽) 등 당시 명망 있던 사림을 탄핵하여 밖으로 내쫓으면서 다시 한번 사림에게 대대적인 타격을 가하려 하였다.

그러나 이를 막으려는 심의겸(沈義謙)의 노력으로 도리어 홍문관부제학 기대항(奇大恒)에 의하여 탄핵받아 함경도 경원으로 유배되었다. 명종 말엽 윤원형세력이 몰락하고 사림들이 득세하자 양사홍문관에서 여러 차례 죄를 주자고 주장하였으나 왕의 중재로 무마되었다.

그뒤 1581년(선조 14) 천재가 심하여 대사면이 단행되자 방면되었다.

[참고문헌]

仁宗實錄
明宗實錄
宣祖實錄
燃藜室記述
大東野乘
國朝榜目

[집필자]

우인수(禹仁秀)
대표명이감(李戡)
감(戡)
성명이감(李戡)
언신(彥愼)

성명 : "이감(李戡)"에 대한 용례

전거용례
國朝編年v08發於經席遽因一時之論至被重罪亦一可矝根壽亦從而進啓如曄言上皆不答翌日兩司劾曄好生議論眩亂是非於是李樑李戡等方主國論遴卽於其日洩於樑根壽亦斥補果川○李樑以罪流樑者國舅沈鋼婦弟也爲人愚而多氣人皆嗤笑之上驟加寵
紀年便攷v12癸亥十八年嘉靖四十二年李樑及其黨李戡䓁有罪遠癸亥竄副提學竒大恒䓁上剳曰吏曺判書李樑身居戚里卽國舅沈鋼婦弟也過蒙寵擢窃㺯威福貽害邦家一國之
震史記略v2闊多氣而不解事上惡元衡專擅威福擢樑不數年至正鄕欲分其權樑怙寵驕橫勢焰薰灸一時嗜利之徒靡然趍附黨與滿朝李戡權信高孟英金百勻李翎等爲爪牙腹心金明胤鄭士龍元繼儉等以崇品阿諛納交愼思愼納賄士龍買題得科仍公論削科仍
震史記略v2納賄士龍買題得科仍公論削科仍樑復科事之如奴樑子廷賓用術擢科得占銓郞仍薦柳永吉自代朴素立尹斗壽不從大憲李戡劾素立斗壽兄弟及李文馨許瞱等物情大駭沈義謙乃樑之甥侄初出仕路欲附士流樑黨奇大恒知內殿心不韙樑乃箚論曰
靑野만集v4司亞長竝擬承旨遂擢樑爲承旨因爲例至今遵行而宗簿正輔德之擬遂廢樑怙寵驕橫勢熖燻灸一時嗜利之輩靡然趨附如李戡權信高孟英金伯鈞李翎等爲其心腹爪牙金明胤鄭士龍元繼儉以崇品之人阿諂納交靦然無恥愼思獻本以奸媚之人納賂
靑野만集v4素立佐郞尹斗壽頗持淸論不從其言廷賓銜之又與李文馨許曄不肯附樑奇大升尹根壽以後進爲士類推許樑黨忌之於是李戡爲憲長劾文馨曄素立斗壽根壽大升等浮薄相煽削爵出外沈義謙乃樑之甥也初出仕路交遊士類欲反樑所爲時奇大怕爲
郯述v02李 戡
大事編年v5不能答義謙曰已奉內旨出示之大恒踊躍快許而去翌日中學一會大恒過樑家從容談話分食除飯以示信義而去俄而大憲李戡抵書于樑曰不意中學一會極可慮是何事也樑答曰副學今見我而去有何事也不過冊校正耳俄而樑之黨與數十人劾奏定
國朝人物志v2樑之子癸亥文科吏曹佐郞臺臣以權奸子倩人作表登科啓請削廢壬辰遇倭於加平山谷被害同上李戡字彥愼羽溪人參判光軾子左尹咸安李世應之外孫中宗癸卯生員文科大司憲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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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