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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협(邊協)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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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화중(和中)
호(號)남호(南湖)
시호(諡號)양정(襄靖)
생년1528(중종 23)
졸년1590(선조 23)
시대조선전기
본관원주(原州)
활동분야무신 > 무신
변계윤(邊季胤)

[상세내용]

변협(邊協)
1528년(중종 23)∼1590년(선조 23). 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원주(原州). 자는 화중(和中), 호는 남호(南湖).

중추부경력(中樞府經歷) 변계윤(邊季胤)의 아들이다. 어려서부터 재주와 용맹이 뛰어났다.

1548년(명종 3) 무과에 급제하고 선전관을 거쳐, 1555년에 해남현감이 되었다.

이때 을묘왜변(乙卯倭變)이 일어나 왜선(倭船) 600여척이 전라도에 침범하여 병사(兵使) 원적(元績), 장흥부사 한온(韓蘊)을 죽이고 영암군수 이덕견(李德堅)을 생포한 뒤, 연이어 난포(蘭浦)‧마도(馬島)‧장흥부병영(長興府兵營)‧강진현(康津縣)‧가리포(加里浦)를 차례로 함락하고 해남으로 침입하려 하자, 그는 섬을 방어하고 왜구를 격퇴한 공으로 장흥부사가 되었다.

또 이때 명나라사람으로서 왜적에게 포로가 되었던 자를 잡아서 명나라로 돌려보내어 명나라로부터 은과 비단을 상으로 받았다.

그뒤 제주목사가 되었는데 1565년 문정왕후(文定王后)가 죽고 보우(普雨)제주도에 귀양오자 조정의 명에 따라 그를 참살하였다.

1587년(선조 20) 전라우방어사(全羅右防禦使)가 되어 녹도(鹿島)‧가리포의 왜구를 격퇴하였으며, 그뒤 공조판서 겸 도총관포도대장을 역임하였다. 일찍이 파주목사(坡州牧使)로 재직할 때 이이(李珥)로부터 『주역계몽(周易啓蒙)』을 강론받았으며, 천문‧지리‧산수에도 정통하였다.

변방 10여 군현을 순시하여 산천도로의 형세를 조사하여 도표로 만들어 적침에 대비하였으며, 천문을 관측하여 변란을 예측하기도 하였는데, 그가 죽은 지 2년 뒤에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왜란 때 신립(申砬)이 군사를 이끌고 문경새재로 떠날 때 적을 가볍게 여기는 것을 본 선조변협을 양장(良將)이라 칭찬하며 그가 없음을 아쉬워하였다. 좌의정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양정(襄靖)이다.

[참고문헌]

明宗實錄
宣祖實錄
燃藜室記述
國朝人物考
月沙集
石潭日記
芝峰類說

[집필자]

이원근(李元根)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