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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吳祥)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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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상지(祥之)
호(號)부훤당(負暄堂)
생년1512(중종 7)
졸년1573(선조 6)
시대조선전기
본관해주(海州)
활동분야문신 > 문신
오예손(吳禮孫)
노씨(盧氏)
외조부노우현(盧佑賢)
저서『부훤당유고』

[관련정보]

[상세내용]

오상(吳祥)
1512년(중종 7)∼1573년(선조 6).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상지(祥之), 호는 부훤당(負暄堂).

부친은 예조좌랑 오예손(吳禮孫)이고, 어머니 노씨(盧氏)노우현(盧佑賢)의 딸이다. 김안국(金安國)의 문인.

1531년(중종 26) 진사가 되고, 1534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사가독서를 하였다. 사간원헌납이 된 뒤 주로 사헌부사간원홍문관승정원‧육조에서 활동하였다.

사헌부에서는 지평 등을 거쳐 일곱차례나 대사헌을 역임하였고, 홍문관에서는 수찬으로부터 시작하여 부제학까지 승진하였으며, 승정원에서는 동부승지에서 도승지에 이르기까지 왕명의 출납을 관장하였다.

만년에는 이조호조예조병조형조판서 등 육조의 장관을 차례로 두루 역임하였다.

1543년 10월 경연에서 관학 교육의 쇠퇴 원인으로 학관자격의 불충실, 학교시설의 미비, 사습(士習)의 사치 등을 지적하고, 이 폐습을 개선하여 관학을 진흥하도록 건의하였다.

1544년 헌납 재직시에는 대사간 구수담(具壽聃)과 함께 왕의 어진 정사와 고른 은혜를 강조하였다.

1555년(명종 10) 시독관(侍讀官)이 되어 태극도(太極圖)를 진강하였고, 언로 개방, 실추된 정령(政令) 및 습속의 개선, 내수사의 형집행부당성과 천인들의 동반정직(東班正職)임명의 불가함, 군왕의 학술진흥 등을 진술하였다.

1555년 동지사명나라에 가서 『대명회전(大明會典)』의 반입, 세자택봉 등의 문제를 건의한 바 있다. 문장에 뛰어나 김주(金澍)민기(閔箕)정유길(鄭惟吉)심수경(沈守慶) 등과 함께 8문장의 한 사람으로 일컬어졌다.

저서로는 『부훤당유고』 1책이 규장각도서에 있다.

[참고문헌]

中宗實錄
明宗實錄
宣祖實錄
國朝榜目
燃藜室記述
眉巖日記草
負暄堂遺稿

[집필자]

정중환(丁仲煥)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