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金澍){2}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2AE40C8FCFFFFB1512X0 |
자(字) | 응림(應霖) |
호(號) | 우암(寓菴) |
시호(諡號) | 문단(文端) |
생년 | 1512(중종 7) |
졸년 | 1563(명종 18) |
시대 | 조선전기 |
본관 | 안동(安東[舊])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김공량(金公亮) |
저서 | 『우암유집』 |
공신호 | 광국공신(光國功臣) |
[관련정보]
[상세내용]
김주(金澍)
1512년(중종 7)∼1563년(명종 18).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舊]). 자는 응림(應霖), 호는 우암(寓菴).
안원군(安原君) 김공량(金公亮)의 아들이다.
1531년에 진사가 되고, 1539년 별시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호당에 뽑혔다. 전라도‧경상도의 관찰사 및 개성유수‧대사헌을 지냈고, 예조참판에 이르렀다.
1563년 제학으로 있을 때 선계변무사(璿系辨誣使)로 명나라에 가서 사명을 완수하였으나 그곳에서 병들어 죽었다.
1590년(선조 23) 그의 공이 인정되어 광국공신(光國功臣) 3등으로 화산군(花山君)에 추봉되었다. 이황(李滉)‧김인후(金麟厚)‧임형수(林亨秀) 등과 교유가 깊었다.
문장이 뛰어났고 초서를 잘 썼다.
저서로는 『우암유집』이 있으며, 시호는 문단(文端)이다.
안원군(安原君) 김공량(金公亮)의 아들이다.
1531년에 진사가 되고, 1539년 별시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호당에 뽑혔다. 전라도‧경상도의 관찰사 및 개성유수‧대사헌을 지냈고, 예조참판에 이르렀다.
1563년 제학으로 있을 때 선계변무사(璿系辨誣使)로 명나라에 가서 사명을 완수하였으나 그곳에서 병들어 죽었다.
1590년(선조 23) 그의 공이 인정되어 광국공신(光國功臣) 3등으로 화산군(花山君)에 추봉되었다. 이황(李滉)‧김인후(金麟厚)‧임형수(林亨秀) 등과 교유가 깊었다.
문장이 뛰어났고 초서를 잘 썼다.
저서로는 『우암유집』이 있으며, 시호는 문단(文端)이다.
[참고문헌]
明宗實錄
宣祖實錄
宣祖實錄
[집필자]
유병용(兪炳勇)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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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