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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권(任權)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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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사경(士經)
호(號)정곡(靜谷)
시호(諡號)정헌(貞憲)
생년1486(성종 17)
졸년1557(명종 12)
시대조선전기
본관풍천(豊川)
활동분야문신 > 문신
임유겸(任由謙)
외조부이신(李愼)
공신호정국공신(靖國功臣)
공신호위사원종공신(衛社原從功臣)

[상세내용]

임권(任權)
1486년(성종 17)∼1557년(명종 12).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사경(士經), 호는 정곡(靜谷).

부친은 공조판서 임유겸(任由謙)이며, 모친은 청단찰방(靑丹察訪) 이신(李愼)의 딸이다.

1507년(중종 2) 진사가 되고, 1513년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승문원 권지부정자에 제수된 뒤 검열정자저작부수찬수찬정언이조정랑병조정랑 등 청요직(淸要職)을 두루 역임하였다.

1519년 지평으로 사림의 공론을 좇아 정국공신(靖國功臣)의 개정을 주청하였고, 기묘사화로 헌납에서 승문원박사로 좌천되었다.

1524년 이후 지평세자시강원필선검상사인세자시강원보덕집의전한 등을 거쳐, 1527년 직제학에 올랐다.

1530년 사인을 거쳐 종부시정으로 있을 때 종친들의 잘못을 철저히 규찰하였다. 이해 집의로 전보되었는데, 이조판서 장순손(張順孫)의 미움을 사서 사섬시정(司贍寺正)으로 좌천되었다.

그뒤 종부시정사섬시정보덕을 거쳐 다시 집의가 되었을 때, 김안로(金安老)의 폐정을 논박하다가 대사간 김언광(金彦光)의 모함으로 파직되어 예산으로 퇴거하였다.

1537년 김안로허항(許沆)채무택(蔡無擇) 등이 제거됨으로써 봉상시부정을 거쳐 예조참의로 중용되었다.

1539년 동지사주청사인 권벌(權橃)과 함께 명나라에 가서 종계(宗系)의 정정을 주청하였다. 이후 전라도관찰사동지중추부사병조판서지중추부사를 거쳐 1544년 예조판서지의금부사를 겸하고, 빈전제조(殯殿提調)를 맡아 중종의 국장의례를 관장하였다.

1546년(명종 1) 위사원종공신(衛社原從功臣)에 녹선되고, 지춘추관사를 겸임하여 『중종실록』『인종실록』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이어 좌참찬우참찬에 오르고, 동지경연사(同知經筵事)오위도총관을 겸하였다.

1551년 양종(兩宗) 및 선과(禪科)가 다시 설치되자 이단의 혁파를 극력 주장하기도 하였다. 시호는 정헌(貞憲)이다.

[참고문헌]

中宗實錄
仁宗實錄
明宗實錄
國朝榜目
國朝人物考
燃藜室記述
大東野乘

[집필자]

이범직(李範稷)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