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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곤(南袞)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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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사화(士華)
호(號)지정(止亭)
호(號)지족당(知足堂)
시호(諡號)문경(文景)
생년1471(성종 2)
졸년1527(중종 22)
시대조선전기
본관의령(宜寧)
활동분야문신 > 문신
남치신(南致信)
저서『유자광전(柳子光傳)』
저서『지정집』

[상세내용]

남곤(南袞)
1471년(성종 2)∼1527년(중종 22).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의령(宜寧). 자는 사화(士華), 호는 지정(止亭)지족당(知足堂).

개국공신 남재(南在)의 후손, 곡산군수 남치신(南致信)의 아들이다. 김종직(金宗直)의 문인이다.

1489년(성종 20) 생원시‧진사시에 합격하고, 1494년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496년(연산군 2) 홍문관수찬에 임명되어 사간원정언을 거친 뒤, 김전(金詮)신용개(申用漑) 등과 함께 사가독서하였다. 홍문관부수찬수찬을 거쳐, 좌랑으로 전정(殿庭)에서 문신을 시험할 때 1등으로 뽑혔다.

1502년 홍문관응교(弘文館應敎)를 거쳐 전한(典翰)부제학을 지냈다.

1504년 갑자사화 때 서변(西邊)으로 유배되었다.

그뒤 1506년(중종 1) 중종반정으로 풀려나, 박경(朴耕)김공저(金公著) 등이 모반한다고 무고하여 그 공으로 가선대부(嘉善大夫)가 되었다.

한때 대간(臺諫)의 탄핵을 받아 황해도관찰사로 전임되었으나, 1510년 문한(文翰)의 제일인자로 인정받아 호조참판대사헌전라도관찰사 등을 역임하고, 좌의정 정광필(鄭光弼)의 천거로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가 되었다.

1515년 우참찬으로 영의정 유순정(柳順汀) 등과 함께 박상(朴祥)김정(金淨)의 신씨복위상소(愼氏復位上疏)에 대하여 반대의견을 제시하였다.

이듬해 홍문관대제학을 겸임하였으며, 뒤에 의정부 좌우찬성대사헌예조판서이조판서 등을 역임하였고, 1518년에는 종계변무(宗系辨誣)를 위한 주청사(奏請使)명나라에 다녀왔다.

1519년 심정(沈貞) 등과 함께 기묘사화를 일으켜 조광조(趙光祖)김정 등 신진사림파를 숙청한 뒤, 좌의정을 거쳐 1523년 영의정이 되었다.

죽은 뒤 문경(文景)이라는 시호가 내려졌으나 사림파의 세력이 강해지자 그들의 탄핵을 받아 1558년(명종 13) 관작과 함께 삭탈당하였고, 선조 초년에는 다시 관작을 추삭(追削)당하였다.

문장에 뛰어나고 글씨에도 능하였으나, 사화를 일으킨 인물이어서 후대 사림의 지탄의 대상이 되었다.

저서로는 『유자광전(柳子光傳)』『지정집』이 있다.

[참고문헌]

燕山君日記
中宗實錄
明宗實錄
國朝人物考
燃藜室記述
大東野乘

[집필자]

이병휴(李秉烋)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