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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유겸(任由謙)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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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숙양(叔讓)
시호(諡號)소간(昭簡)
생년1456(세조 2)
졸년1527(중종 22)
시대조선전기
본관풍천(豊川)
활동분야문신 > 문신
임옥(任沃)
외조부홍심(洪深)

[상세내용]

임유겸(任由謙)
1456년(세조 2)∼1527년(중종 22).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숙양(叔讓).

부친은 증이조판서 임옥(任沃)이며, 모친은 남양홍씨홍심(洪深)의 딸이다.

1480년(성종 11) 사마시를 거쳐 1489년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 권지부정자박사검교감찰을 역임하고, 1495년(연산군 1)에 정조사(正朝使)서장관(書狀官)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그뒤 정언으로 있으면서 중국사신을 능멸하였다고 피죄(被罪)되기도 하였다.

이듬해 부수찬교리를 거쳐 병조정랑으로 승문원교리춘추관기주관을 겸직하여 『성종실록』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1498년 부응교로 있을 때 길에서 대신을 만나 말에서 내리지 않아 무례하다는 탄핵을 받고 삭직되었다가, 이듬해 부사용(副司勇)의 무반(武班)말단직에 서용된 뒤 훈련원첨정 등을 거치면서 7년 동안 여러 한직을 옮겨다녔다.

1504년 갑자사화가 일어났을 때 윤비 폐위에 관련된 관원들의 처벌을 주장하였고, 이어 형조이조참의, 병조참판을 거쳐 시혜청제조(施惠廳提調)를 겸직하고, 이듬해 사은부사(謝恩副使)명나라에 가서 조선 표류민을 데리고 돌아오는 교섭을 담당한 뒤 경상도관찰사로 나갔다. 이어 중종반정이 일어난 뒤 1506년(중종 1) 동지중추부사청승습사(請承襲使)를 겸직하고, 다시 중국에 다녀왔다.

이듬해 동지중추관사를 겸직, 『연산군일기』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1508년 대사헌에 이르고, 이후 공조병조 참판, 전라도관찰사호조참판경기도관찰사형조판서한성부판윤공조판서 등을 역임하고, 1526년 지중추부사가 되었다. 이행(李荇)이 그의 비명을 지었다. 시호는 소간(昭簡)이다.

[참고문헌]

成宗實錄
燕山君日記
中宗實錄
燃藜室記述
國朝榜目
國朝人物考

[집필자]

이범직(李範稷)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