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인(朴齊寅)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BC15C81CC778B1818X0 |
자(字) | 치량(稚亮) |
생년 | 1818(순조 18) |
졸년 | 1884(고종 21)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반남(潘南)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박주수(朴周壽) |
[관련정보]
[상세내용]
박제인(朴齊寅)
1818년(순조 18)∼1884년(고종 21).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치량(稚亮). 예조판서 박주수(朴周壽)의 아들이다.
1856년(철종 7)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1858년 병조정랑‧호조참의, 1860년 이조참판을 역임하였다.
고종조에도 중용되어 대원군 집권기에는 병조참판‧안악군수(安岳郡守)‧영변부사(寧邊府使)‧이조참판‧한성부판윤‧예조판서‧형조판서, 민씨정권하에서는 경상감사(慶尙監司)‧이조판서‧상호군(上護軍) 등을 역임하였다. 경상감사로 재임시인 1875∼1876년은 영남일대가 연이은 흉년을 맞아 굶주려 죽는 사람이 속출하였다.
이같은 도내의 민정(民情)을 의정부에 장계로 보고해서 재해가 심한 읍면의 사창곡(社倉穀) 납부를 이듬해 가을까지 연기시키고 2,000결을 면세지로 책정받는 동시에 부민(富民)의 빈민구제를 권장하는 등 진휼대책에 힘썼다.
1856년(철종 7)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1858년 병조정랑‧호조참의, 1860년 이조참판을 역임하였다.
고종조에도 중용되어 대원군 집권기에는 병조참판‧안악군수(安岳郡守)‧영변부사(寧邊府使)‧이조참판‧한성부판윤‧예조판서‧형조판서, 민씨정권하에서는 경상감사(慶尙監司)‧이조판서‧상호군(上護軍) 등을 역임하였다. 경상감사로 재임시인 1875∼1876년은 영남일대가 연이은 흉년을 맞아 굶주려 죽는 사람이 속출하였다.
이같은 도내의 민정(民情)을 의정부에 장계로 보고해서 재해가 심한 읍면의 사창곡(社倉穀) 납부를 이듬해 가을까지 연기시키고 2,000결을 면세지로 책정받는 동시에 부민(富民)의 빈민구제를 권장하는 등 진휼대책에 힘썼다.
[참고문헌]
哲宗實錄
高宗實錄
世藏年錄
國朝榜目
高宗實錄
世藏年錄
國朝榜目
[집필자]
신영우(申榮祐)
명 : "제인(齊寅)"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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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