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연상(吳淵常)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624C5F0C0C1B1765X0 |
자(字) | 사묵(士黙) |
호(號) | 약암(約菴) |
생년 | 1765(영조 41) |
졸년 | 1821(순조 21)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해주(海州)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오재륜(吳載綸) |
생부 | 오재순(吳載純) |
출신지 | 서울 |
저서 | 『약암집』 |

[상세내용]
오연상(吳淵常)
1765년(영조 41)∼1821년(순조 21).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사묵(士黙), 호는 약암(約菴). 서울 출신. 대제학 오재순(吳載純)의 아들로, 진사 오재륜(吳載綸)에게 입양되었다.
1800년(정조 24)에 유학으로서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부정자를 지냈고, 내각에서 문관들을 강제(講製)하였으며, 다음해에는 예문관검열이 되었고, 1802년(순조 2) 사헌부감찰을 역임하였다. 이어 3년 동안 사간원정언‧홍문관부교리‧검상 등을 차례로 역임하였다.
1805년에 사헌부장령을 거쳐 부응교‧형조참의‧승정원동부승지 등을 지낸 뒤 이듬해는 이조참의가 되었다. 이어서 영흥‧남양의 부사로서 외직에서 근무하다가 다시 내직으로 들어와 병조‧공조참의를 역임하였다.
1811년에는 영변부사로 부임하여 당시 가산지방에서 일어난 홍경래(洪景來)의 난에 민병을 이끌고 성을 수비하였으며, 태천지방을 탈환하여 난의 우두머리인 변대익(邊大益)을 주살하는 공을 세웠다.
그뒤 도총부도총관이 되고, 잇따라 한성부의 좌윤‧우윤을 거쳐 예조참판‧동지경연사(同知經筵事) 등을 역임하였다. 다시 안동부사로 부임하였으며, 어머니의 상을 치른 뒤 이조참판‧부제학‧도승지‧비변사제조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로는 『약암집』 10권이 필사본으로 전한다.
1800년(정조 24)에 유학으로서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부정자를 지냈고, 내각에서 문관들을 강제(講製)하였으며, 다음해에는 예문관검열이 되었고, 1802년(순조 2) 사헌부감찰을 역임하였다. 이어 3년 동안 사간원정언‧홍문관부교리‧검상 등을 차례로 역임하였다.
1805년에 사헌부장령을 거쳐 부응교‧형조참의‧승정원동부승지 등을 지낸 뒤 이듬해는 이조참의가 되었다. 이어서 영흥‧남양의 부사로서 외직에서 근무하다가 다시 내직으로 들어와 병조‧공조참의를 역임하였다.
1811년에는 영변부사로 부임하여 당시 가산지방에서 일어난 홍경래(洪景來)의 난에 민병을 이끌고 성을 수비하였으며, 태천지방을 탈환하여 난의 우두머리인 변대익(邊大益)을 주살하는 공을 세웠다.
그뒤 도총부도총관이 되고, 잇따라 한성부의 좌윤‧우윤을 거쳐 예조참판‧동지경연사(同知經筵事) 등을 역임하였다. 다시 안동부사로 부임하였으며, 어머니의 상을 치른 뒤 이조참판‧부제학‧도승지‧비변사제조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로는 『약암집』 10권이 필사본으로 전한다.
[참고문헌]
正祖實錄
純祖實錄
國朝榜目
約菴集
純祖實錄
國朝榜目
約菴集
[집필자]
박정자(朴定子)
대표명 | 오연상(吳淵常) |
성명 | 오연상(吳淵常) |
성명 : "오연상(吳淵常)"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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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