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도(金履度)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AE40C774B3C4B1750X0 |
자(字) | 계근(季謹) |
생년 | 1750(영조 26) |
졸년 | 1813(순조 13)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안동(安東[新])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김탄행(金坦行) |
외조부 | 한백증(韓百增) |

[상세내용]
김이도(金履度)
1750년(영조 26)∼1813년(순조 13).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新]). 자는 계근(季謹).
부친은 김탄행(金坦行)이며, 모친은 한백증(韓百增)의 딸이다.
1800년(정조 24) 전령(前令)으로서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바로 부수찬에 제수되었으며, 이어 정언‧승지 등을 역임하였다.
그러나 그해 정조가 죽고 순조가 즉위한 뒤 정순왕후의 수렴청정이 시작되고 벽파(僻派)가 득세하자 시파(時派)로 몰려 영암에 유배되었다가 이듬해 풀려났다.
1804년 대사성을 비롯하여 이듬해 대사간이 되었으며, 김조순(金祖淳)의 딸이 왕비가 된 뒤 외척세력이 득세하자 우주서사관(虞主書寫官)으로 가자되었다.
1806년 홍문관부제학‧경기도관찰사‧예조판서‧형조판서‧한성부판윤, 1810년 병조판서‧공조판서 등을 거쳐 의정부좌참찬을 역임하였다.
또, 그해 대사헌으로 액례군(掖隷軍) 증액을 상소하고 무예별기군을 선발하여 훈련도감에 환부하게 하였으며, 1812년 수원부유수가 되었다. 지조가 굳었으며 친하고 먼 것을 가리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신임이 두터웠다.
부친은 김탄행(金坦行)이며, 모친은 한백증(韓百增)의 딸이다.
1800년(정조 24) 전령(前令)으로서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바로 부수찬에 제수되었으며, 이어 정언‧승지 등을 역임하였다.
그러나 그해 정조가 죽고 순조가 즉위한 뒤 정순왕후의 수렴청정이 시작되고 벽파(僻派)가 득세하자 시파(時派)로 몰려 영암에 유배되었다가 이듬해 풀려났다.
1804년 대사성을 비롯하여 이듬해 대사간이 되었으며, 김조순(金祖淳)의 딸이 왕비가 된 뒤 외척세력이 득세하자 우주서사관(虞主書寫官)으로 가자되었다.
1806년 홍문관부제학‧경기도관찰사‧예조판서‧형조판서‧한성부판윤, 1810년 병조판서‧공조판서 등을 거쳐 의정부좌참찬을 역임하였다.
또, 그해 대사헌으로 액례군(掖隷軍) 증액을 상소하고 무예별기군을 선발하여 훈련도감에 환부하게 하였으며, 1812년 수원부유수가 되었다. 지조가 굳었으며 친하고 먼 것을 가리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신임이 두터웠다.
[참고문헌]
正祖實錄
純祖實錄
國朝榜目
純祖實錄
國朝榜目
[집필자]
박정자(朴定子)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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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