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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협(金昌協)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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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중화(仲和)
호(號)삼주(三洲)
시호(諡號)문간(文簡)
생년1651(효종 2)
졸년1708(숙종 34)
시대조선중기
본관안동(安東[新])
활동분야학자 > 유생
김수항(金壽恒)
안정나씨(安定羅氏)
증조부김상헌(金尙憲)
외조부나성두(羅星斗)
출신지경기도 과천
저서『농암집』
저서『주자대전차의문목(朱子大全箚疑問目)』
저서『논어상설(論語詳說)』
저서『오자수언(五子粹言)』
저서『이가시선(二家詩選)』

[상세내용]

김창협(金昌協)
1651년(효종 2)∼1708년(숙종 34). 조선 후기의 유학자. 본관은 안동(安東[新]). 자는 중화(仲和), 호는 농암(農巖) 또는 삼주(三洲). 경기도 과천 출신.

좌의정 김상헌(金尙憲)의 증손자, 부친은 영의정 김수항(金壽恒), 모친은 안정 나씨(安定羅氏)나성두(羅星斗)의 딸이다. 영의정을 지낸 김창집(金昌集)의 아우이다.

1669년(현종 10) 진사시에 합격하고, 1682년(숙종 8) 증광문과에 전시장원으로 급제하여 전적에 출사한 뒤, 병조좌랑사헌부지평부교리 등을 거쳐 교리이조좌랑함경북도병마평사(咸鏡北道兵馬評事)이조정랑집의동부승지대사성병조참지(兵曹參知)예조참의대사간 등을 역임하고, 송시열(宋時烈)『주자대전차의(朱子大全箚疑)』를 승명교정(承命校正)하였다. 청풍부사로 있을 때 기사환국으로 아버지가 진도에서 사사되자, 사직하고 영평(永平)에 은거하였다.

1694년 갑술옥사 후 아버지가 신원됨에 따라, 호조참의예조참판홍문관제학이조참판대제학예조판서세자우부빈객지돈녕부사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사직하고 학문에 전념하였다.

평소에 부드럽고 화기가 가득하지만 의리를 변핵함에 있어서는 성조(聲調)를 높여 기절(氣節)이 강개하여 담봉(談鋒)을 범하지 못하였고, 선입(先入)한 의견을 내세우지 않아 다른 사람의 의견이 옳으면 곧 주장한 바를 양보하였다. 후학을 순순히 교화하여 모두 심복하게 하였다.

문장은 단아순정(端雅純正)하여 구양수(歐陽修)의 정수를 얻고, 시는 두보(杜甫)의 영역에 출입하였으나 답습과 조회(藻繪)를 일삼지 않고 고고건아(高古健雅)하였다.

학문은 이황(李滉)이이(李珥)의 설을 절충하였다. “사단(四端)은 선(善)뿐이고 칠정(七情)은 선과 악을 겸하였으니, 사단은 오로지 이(理)만 뜻하고 칠정은 기(氣)를 겸한 것”이라는 이이의 설에 대하여, 다만 기까지 겸하였다 하는 한 구절이 다르다. 칠정이 비록 이와 기를 겸하였더라도 그 선한 것은 기가 능히 이를 따랐음이요, 그 선하지 않은 것은 기가 능히 이를 따르지 않은 것이니, 처음부터 기가 주된 것이라고 하여 이황의 기발이승(氣發理乘)의 설을 찬동하였다.

또, 인심도심설(人心道心說)에서도 기의 맑은 것이 다 선하나 선한 정(情)이 모두 맑은 기에서 나왔다 함은 옳지 않으며, 정의 악한 것이 탁(濁)한 기에서 나왔으나 탁한 기가 발(發)하여 된 정이 모두 악하다고 할 수는 없다. 인심의 동(動)함에 이가 비록 기에 탔어도 기가 또한 이의 명령을 듣는 것이다. 만약, 선악의 정을 모두 기의 청탁에 돌린다면 이의 실체와 성(性)의 선함을 보지 못할 것이라고 하였다.

또 「성악론변(性惡論辨)」에서는 “사람의 성은 본래 선한 것이나 순경(荀卿)이 인성을 악하다고 말한 것은 기요, 성이 아니다. 대체로, 사람이 세상에 날 때 기는 질(質)이 되고 이는 성이 되는 것인데, 이에는 선만 있고 악이 없으나 기에는 선한 것도 있고 선하지 못한 것도 있으니, 사람에게 선하지 못함이 있음은 기의 소위이다.”라고 규정하였다. 대체로 이기설은 이이보다는 이황의 설에 가까우며 호론(湖論)을 지지하였다.

특히, 문장에 능하며 글씨도 잘 써서 문정공이단상비(文貞公李端相碑)‧감사이만웅비(監司李萬雄碑)‧김숭겸표(金崇謙表)‧김명원신도비전액(金命元神道碑篆額) 등이 있다. 숙종의 묘정에 배향되었으며, 양주석실서원(石室書院), 영암녹동서원(鹿洞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농암집』『주자대전차의문목(朱子大全箚疑問目)』『논어상설(論語詳說)』『오자수언(五子粹言)』『이가시선(二家詩選)』 등이 있고, 『강도충렬록(江都忠烈錄)』『문곡연보(文谷年譜)』 등을 편집하였다.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참고문헌]

農巖集
朝鮮儒學史(玄相允, 民衆書館, 1954)

[집필자]

김창현(金彰顯)

명 : "창협(昌協)"에 대한 용례

전거용례
紀年便攷v28兄弟文科弟昌協見下子濟謙
紀年便攷v28章甚端雅天姿頴悟進修不怠宋時烈註朱子書未成臨終託昌協卒業是為朱子劄疑問目十二卷李滉李珥論四端七情不合昌協折衷成一說是為四端七情說一卷戊子卒年五十八諡文簡哲宗庚申命不祧系子崇謙見下
紀年便攷v29金昌翕昌協弟羅星斗外孫金世弼姪婿孝宗癸巳生字子益號三淵糿豪逸不覊日與里中兒敖盪踰十歲不上學其母以為言其父曰兒自
紀年便攷v29金崇謙昌協子李端相外孫朴權婿肅宗壬戌生字君山號觀復齋有才有行且有志而不幸短命賦詩奇峻蒼古不肯以章句小儒自命卓爾
紀年便攷v29憲府啓楊州石室書院文正公金尚憲姐豆之地金壽恒及其子昌協非有名節學術濫躋賢廟逆集㐲法之後尢宜亟舉撤享槐山地鄭澔營建一宇結構之壮製度之侈儼一儒宫道路相傳謂鄭判
東國歷代總目v02戊子前禮曹判書金昌協卒○昌協字仲和號農巖壽恒之子早通顯自遭家禍屛居力學累遷正卿文衝不拜至是卒年五十八諡文簡
國朝捷錄v01昌協
國朝人物志v3卽父領議政壽恒娶牧使安定羅星斗女生四子昌集忠獻公號夢窩壬寅以建儲遇禍仲昌協叔昌翕俱以道學文章有大名世所稱農岩三淵兩先生是也行狀三淵相人往往有奇中處鄭麻
國朝人物志v3汝成號夢窩安東人壽恒子癸丑進士肅宗甲子文科第二名母夫人羅氏有□鑑壬戌科榜弟昌協登第入見羅氏嚬眉曰奚爲如山林處士樣乎及昌集登第入見則莞然笑曰相臣出矣靑邱叢話丙戌拜右
國朝人物志v3逸屢徵不起官至大司憲諡文元文獻錄金元行字伯春號渼湖又號雲樓安東人農岩昌協之孫以遺逸官至贊善金亮行號止菴安東人受業于蟾村閔遇洙以遺逸官至贊善諡文元
國朝人物志v3鏡城子孫遂居焉載亨自幼沈潛重厚動止有法纔弱冠聞農岩金昌協以評事到北載亨遂往學昌協授以近思錄及退溪集曰爲學門路在是自是益奮厲專篤以爲持身之符晚又得朱子大全語類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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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