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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선징(張善澂)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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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정지(淨之)
호(號)두곡(杜谷)
시호(諡號)정장(正莊)
생년1614(광해군 6)
졸년1678(숙종 4)
시대조선중기
본관덕수(德水)
활동분야문신 > 문신
장유(張維)

[상세내용]

장선징(張善澂)
1614년(광해군 6)∼1678년(숙종 4).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정지(淨之), 호는 두곡(杜谷). 대제학(大提學) 장유(張維)의 아들이며, 효종인선왕후(仁宣王后)의 오빠이다.

인조 때 공신의 아들이라 하여 음보로 영희전참봉(永禧殿參奉)에 보직되었으며, 세자익위사위수를 거쳐 1648년(인조 26) 김화현감을 지냈다. 효종공조정랑배천군수를 역임하였으며, 현종충훈부도사(忠勳府都事)를 지냈다.

1662년(현종 3) 철원부사로 있을 때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성균관직강사헌부지평장령부교리헌납교리수찬사간우부승지병조참지 등을 지냈다.

병조참판으로 아버지의 작위를 승습하여 풍양군(豊陽君)에 봉하여진 뒤 대사간도승지대사헌공조판서예조판서우참찬 등을 역임하였다.

1674년 숙종이 즉위한 뒤 좌참찬판의금부사지경연춘추관사(知經筵春秋館事) 등을 역임하였다.

1677년(숙종 3) 한성부판윤으로 있을 때 외척 김우명(金佑明)의 무소(誣訴)로 송시열(宋時烈)거제부에 안치되자 이에 대한 철회를 간청하였으나 숙종은 허락하지 않았다.

그뒤 사헌부집의 이상(李翔)이 소를 올려 신원(伸寃)하여줄 것을 청하다가 관직을 삭탈당하자, 이상의 관직삭탈명령을 환수해줄 것을 주청하다가 척신으로서 사(私)를 앞세우고 공(公)을 뒤로 한다는 이유로 파직되었다.

그뒤에도 여러 차례 송시열의 신원을 간청하는 상소를 하였으나 용납되지 않자 고향에 돌아가 두문불출하였다. 시호는 정장(正莊)이다.

[참고문헌]

顯宗實錄
肅宗實錄
江漢集
國朝榜目

[집필자]

이희권(李羲權)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