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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세정(沈世鼎)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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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중숙(重叔)
호(號)시약헌(蒔藥軒)
생년1610(광해군 2)
졸년?(미상)
시대조선중기
본관청송(靑松)
활동분야문신 > 문신
심후(沈詡)
조부심우신(沈友信)
처부박해(朴垓)
외조부정윤우(丁胤祐)

[상세내용]

심세정(沈世鼎)
1610년(광해군 2)∼미상.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중숙(重叔), 호는 시약헌(蒔藥軒). 병조참판 심우신(沈友信)의 손자이며, 심후(沈詡)의 아들이고, 모친은 지평 정윤우(丁胤祐)의 딸이다. 부인은 영춘현감 박해(朴垓)의 딸이다.

1641년(인조 19)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642년 사관(史官)을 거친 자로 춘추사(春秋使)에 천거되었으며, 검열로서 대제학 이식(李植)과 함께 적상산성(赤裳山城)의 실록을 살펴보고 왔으며, 봉교로서 강화를 다녀와서 열성실록(列聖實錄) 및 『노산군일기(魯山君日記)』『연산군일기』 1,025권 가운데 전무자(全無者)가 148권, 낙장자(落張者) 167권이고, 『광해군일기』는 전무자 65권, 낙장자 2권이며, 1621년(광해군 13) 8월 이후는 전무하므로 그 사이의 권수가 얼마인지 알 수 없다고 보고하였다.

정언장령을 거쳐 1652년(효종 3) 암행어사에 제수되고, 집의 때에 대청(臺廳)에 있으면서 대비를 인피(引避)하지 않아 무만대비죄(誣慢大妃罪)로 체차(遞差)되었다.

그뒤 보덕사간부교리를 거쳐, 1654년 문안사(問安使) 인평대군(麟坪大君)서장관이 되어 청나라를 다녀와서 삼사를 두루 거쳤다.

1661년(현종 2)에는 실록찬수의 공로로 가자(加資)되고, 승지병조참지병조참의판결사형조참의예조참의승지를 지냈다.

[참고문헌]

仁祖實錄
孝宗實錄
顯宗實錄
國朝榜目
增補文獻備考
燃藜室記述

[집필자]

주웅영(朱雄英)
대표명심세정(沈世鼎)
성명심세정(沈世鼎)

성명 : "심세정(沈世鼎)"에 대한 용례

전거용례
郯述v01正使靈豊君㵓副使禮曹參判李一相書狀官校理沈世鼎
郯述v02四月薦別兼沈東龜李愓然鄭維成尹絳洪命一金李䅘林溥○別兼新薦始比月新薦柳琚沈世鼎有物議不用
郯述v04座目未詳○以前館錄仍用而卞時益申河普朴吉應李弘淵沈世鼎林翰伯李沆任義伯九人未參閔鼎重加入
御營廳都謄錄n1-2책□不中懸錄以入可也庚子十二月十二日大司憲蔡裕後執議沈世鼎掌令鄭撲‧尹飛卿啓曰訓局御營軍保及諸各司匠人奉足當
孝宗大王實錄纂修廳儀軌副承旨南龍翼前承政院左承旨吳挺緯三房郞廳弘文館修撰沈世鼎弘文館校理李翊兵曹正郞呂聖齊司諫院正言洪柱三副司直
孝宗大王實錄纂修廳儀軌庚子六月初七日) 實錄廳郞廳以摠裁官意啓曰三房郞廳沈世鼎曾在庚寅實錄纂修時已經都廳 郞廳之任者也郭之欽改差
孝宗大王實錄纂修廳儀軌正及書役比前尤急以都廳郞廳四員猶 患不能周旋而郞廳沈世鼎遞職之後時無職名不得仕進令該 曹口傳付軍職使之察任
孝宗大王實錄纂修廳儀軌睦兼善議政府舍人趙龜錫弘文館應敎金壽興弘文館副應敎沈世鼎 以上庚子五月二十日啓下辛丑二月二十七日減下 書寫
孝宗大王實錄纂修廳儀軌 庚子五月二十一日啓下八月二十二日減下 弘文館修撰沈世鼎 庚子五月二十一日啓下六月初七日都廳郞廳啓下代掌令
孝宗大王實錄纂修廳儀軌 後 行副護軍沈世鼎行戶曹判書許積吏曹參判金壽恒吏曹參議趙復陽 弘文館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