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강(尹絳)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2C724AC15FFFFB1597X0 |
자(字) | 자준(子駿) |
호(號) | 무곡(無谷) |
생년 | 1597(선조 30) |
졸년 | 1667(현종 8)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파평(坡平)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윤민헌(尹民獻) |
[상세내용]
윤강(尹絳)
1597년(선조 30)∼1667년(현종 8).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자준(子駿), 호는 무곡(無谷). 공조참의 윤민헌(尹民獻)의 아들이다.
1624년(인조 2)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승문원‧예문관에서 여러 관직을 역임한 뒤 1626년 검열이 되었다. 같은해 봉교‧정언‧교리를 거쳐, 1642년 사은 겸 진주사(謝恩兼陳奏使)의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다녀와서 승정원승지가 되고 이조참의를 지냈다.
효종 때 대사간으로 있다가 한때는 충원현감(忠原縣監)으로 나갔으며,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라 이조참판‧대사헌‧도승지를 지내고, 형조판서를 역임하였다.
1657년(효종 8) 동지사로 청나라에 다녀오고, 1659년 효종의 상을 당하였을 때 예조판서로서 빈‧장양도감(殯葬兩都監)의 제조(提調)를 겸하여 힘껏 주선한 공으로 숭정대부‧판의금부사에 오르고 이조판서가 되어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다.
인조‧효종‧현종 3조에 역사하여 80여 벼슬을 지내면서 신명을 바쳐 일하였으며, 1664년(현종 5) 민유중(閔維重)의 탄핵으로 사퇴하여 안산(安山) 옛 집으로 돌아간 뒤에도 여러 번 조정에서 불렀으나 모두 사퇴하였다.
1624년(인조 2)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승문원‧예문관에서 여러 관직을 역임한 뒤 1626년 검열이 되었다. 같은해 봉교‧정언‧교리를 거쳐, 1642년 사은 겸 진주사(謝恩兼陳奏使)의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다녀와서 승정원승지가 되고 이조참의를 지냈다.
효종 때 대사간으로 있다가 한때는 충원현감(忠原縣監)으로 나갔으며,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라 이조참판‧대사헌‧도승지를 지내고, 형조판서를 역임하였다.
1657년(효종 8) 동지사로 청나라에 다녀오고, 1659년 효종의 상을 당하였을 때 예조판서로서 빈‧장양도감(殯葬兩都監)의 제조(提調)를 겸하여 힘껏 주선한 공으로 숭정대부‧판의금부사에 오르고 이조판서가 되어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다.
인조‧효종‧현종 3조에 역사하여 80여 벼슬을 지내면서 신명을 바쳐 일하였으며, 1664년(현종 5) 민유중(閔維重)의 탄핵으로 사퇴하여 안산(安山) 옛 집으로 돌아간 뒤에도 여러 번 조정에서 불렀으나 모두 사퇴하였다.
[참고문헌]
仁祖實錄
孝宗實錄
顯宗實錄
國朝人物考
燃藜室記述
國朝榜目
宋子大全
孝宗實錄
顯宗實錄
國朝人物考
燃藜室記述
國朝榜目
宋子大全
[집필자]
유병용(兪炳勇)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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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