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우길(成佑吉)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131C6B0AE38B1571X0 |
자(字) | 자수(自受) |
생년 | 1571(선조 4) |
졸년 | 1623(인조 1)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창녕(昌寧) |
활동분야 | 무신 > 무신 |

부 | 성박(成鎛) |

[관련정보]
[상세내용]
성우길(成佑吉)
1571년(선조 4)∼1623년(인조 1). 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자수(自受). 수사 성박(成鎛)의 아들이다.
1590년(선조 23)에 무과에 급제하고 임진왜란 때 선전관으로서 왕을 호종하였다. 훈련부정(訓鍊副正)에 발탁되고 공조좌랑‧해주판관을 역임하였다.
1604년에 북도우후(北道虞候)를 제수받고 특별히 자금은주자(紫金銀胄子)를 하사받았다.
여진인 아비귀패가면(阿比鬼孛可免) 등을 토벌하는 데 공을 세우고 1606년 전라도병마절도사‧훈련원도정‧안변부사‧길주목사를 거쳐 통제사가 되었는데 그동안 그의 근무의 태만과 방군징포(放軍徵布)가 심하다 하여 여러 번 탄핵을 받았다.
1613년(광해군 5) 서로방어사(西路防禦使), 1618년 평안도병마절도사‧함경도순변사(咸鏡道巡邊使)를 역임하고, 1620년 호조판서에 올랐다.
1622년 함경남도병마절도사로 있을 때 도원수 한준겸(韓浚謙)이 인조반정에 가담할 것을 권유하였으나 이를 거절하고 벼슬을 버리고 고향에 돌아갔다.
1623년 반정 후 황현(黃玹)의 역모사건에 연루되어 장살되었다.
이듬해 이귀(李貴)의 상소로 복관되었다.
1590년(선조 23)에 무과에 급제하고 임진왜란 때 선전관으로서 왕을 호종하였다. 훈련부정(訓鍊副正)에 발탁되고 공조좌랑‧해주판관을 역임하였다.
1604년에 북도우후(北道虞候)를 제수받고 특별히 자금은주자(紫金銀胄子)를 하사받았다.
여진인 아비귀패가면(阿比鬼孛可免) 등을 토벌하는 데 공을 세우고 1606년 전라도병마절도사‧훈련원도정‧안변부사‧길주목사를 거쳐 통제사가 되었는데 그동안 그의 근무의 태만과 방군징포(放軍徵布)가 심하다 하여 여러 번 탄핵을 받았다.
1613년(광해군 5) 서로방어사(西路防禦使), 1618년 평안도병마절도사‧함경도순변사(咸鏡道巡邊使)를 역임하고, 1620년 호조판서에 올랐다.
1622년 함경남도병마절도사로 있을 때 도원수 한준겸(韓浚謙)이 인조반정에 가담할 것을 권유하였으나 이를 거절하고 벼슬을 버리고 고향에 돌아갔다.
1623년 반정 후 황현(黃玹)의 역모사건에 연루되어 장살되었다.
이듬해 이귀(李貴)의 상소로 복관되었다.
[참고문헌]
宣祖實錄
光海君日記
仁祖實錄
光海君日記
仁祖實錄
[집필자]
김동수(金東洙)
대표명 | 성우길(成佑吉) |
명 | 우길(祐吉) |
성명 | 우후성우길(虞候成祐吉) |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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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