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남(金止男)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AE40C9C0B0A8B1559X0 |
자(字) | 자정(子定) |
호(號) | 용계(龍溪) |
생년 | 1559(명종 14) |
졸년 | 1631(인조 9)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광산(光山)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김양(金讓) |
생부 | 김표(金彪) |
[관련정보]
[상세내용]
김지남(金止男)
1559년(명종 14)∼1631년(인조 9).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자정(子定), 호는 용계(龍溪). 김순성(金順誠)의 현손이며, 부친은 영동현감 김표(金彪)이다. 재종숙 김양(金讓)에게 입양되었다.
1591년(선조 24) 사마시에 합격하고, 같은해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검열이 되었다.
1593년 정자가 된 데 이어, 지제교‧수찬‧교리‧응교‧정언‧사간‧장령‧집의‧필선‧보덕‧승지, 예조‧병조‧형조참의 등을 두루 역임하였다.
1613년(광해군 5) 집의로 있을 때, 박응서(朴應犀)의 무고로 영창대군을 죽이자고 주장하는 지평 정호관(丁好寬)을 면박했고, 인목대비를 폐하려는 이이첨(李爾瞻)일당에 반대하면서 그 죄상을 폭로하였다.
외직으로 행주판관, 경기‧평안‧전라‧강원도의 도사를 거쳐서 경상감사 및 남양‧순천‧상주‧청풍의 수령을 역임하였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광해군 때 임명된 조신들이 외직에서 모두 파직되었으나 특별히 유임되었다.
저서로는 『용계유고』가 있다.
1591년(선조 24) 사마시에 합격하고, 같은해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검열이 되었다.
1593년 정자가 된 데 이어, 지제교‧수찬‧교리‧응교‧정언‧사간‧장령‧집의‧필선‧보덕‧승지, 예조‧병조‧형조참의 등을 두루 역임하였다.
1613년(광해군 5) 집의로 있을 때, 박응서(朴應犀)의 무고로 영창대군을 죽이자고 주장하는 지평 정호관(丁好寬)을 면박했고, 인목대비를 폐하려는 이이첨(李爾瞻)일당에 반대하면서 그 죄상을 폭로하였다.
외직으로 행주판관, 경기‧평안‧전라‧강원도의 도사를 거쳐서 경상감사 및 남양‧순천‧상주‧청풍의 수령을 역임하였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광해군 때 임명된 조신들이 외직에서 모두 파직되었으나 특별히 유임되었다.
저서로는 『용계유고』가 있다.
[참고문헌]
光海君日記
仁祖實錄
國朝人物考
增補文獻備考
國朝榜目
仁祖實錄
國朝人物考
增補文獻備考
國朝榜目
[집필자]
박익환(朴翼煥)
수정일 | 수정내역 |
---|---|
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