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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응경(裵應褧)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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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회보(晦甫)
호(號)안촌(安村)
생년1544(중종 39)
졸년1602(선조 35)
시대조선중기
본관성주(星州)
활동분야문신 > 문신
배무선(裵茂先)
저서『안촌집』

[상세내용]

배응경(裵應褧)
1544년(중종 39)∼1602년(선조 35).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회보(晦甫), 호는 안촌(安村).

배무선(裵茂先)의 아들이다.

1573년(선조 6) 사마시에 합격하고, 1576년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으며, 정랑을 거쳐 청도군수로 재직하던 중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왜적과 대항하여 싸웠다.

군사 1,000명을 모아 ‘야격군(野擊軍)’이라 하고 박경전(朴慶傳)을 대장(代將)으로 삼아 왜적 수백명을 포획하였다.

이때의 전공으로 통정대부로 승진하였다.

1595년(선조 28) 순천부사가 되었으며, 1597년 정유재란 때 좌의정 김응남(金應南)의 천거로 나주목사가 되어 금산을 수비하였다.

이때 통제사 이순신(李舜臣)의 요청으로 후퇴하는 적의 퇴로를 막아 분쇄하려 하였다.

그러나 감사 황신(黃愼)의 무고로 투옥되었다가, 우찬성 심희수(沈喜壽)부마(駙馬) 서경주(徐景霌) 등의 상소로 곧 석방되었다.

1601년 대구부사가 되었으나 얼마 되지 않아 사직하였다.

그뒤 영천(榮川)에 머물며 김륵(金玏)김우옹(金宇顒)『반야심경』을 강론하는 등, 제현과 교유하며 여생을 보냈다.

일찍이 유성룡과도 교유하였는데, 그의 박학함에 유성룡이 탄복하였다 한다. 예조참판에 추증되었다.

저서로는 『안촌집』이 있다.

[참고문헌]

宣祖實錄
安村集
鶴沙集

[집필자]

문수홍(文守弘)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