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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원형(尹元衡)

[요약정보]

UCIG002+AKS-KHF_13C724C6D0D615D1565X0
자(字)언평(彦平)
생년?(미상)
졸년1565(명종 20)
시대조선전기
본관파평(坡平)
활동분야문신 > 문신
윤지임(尹之任)
공신호보익공신(保翼功臣)
공신호위사공신(衛社功臣)

[상세내용]

윤원형(尹元衡)
미상∼1565년(명종 20).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언평(彦平).

판돈녕부사 윤지임(尹之任)의 아들이며, 중종의 계비인 문정왕후(文定王后)의 동생이다.

1528년(중종 23) 생원시에 합격하고, 1533년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다.

1537년 권신인 김안로(金安老)에 의하여 파직, 유배되었다가 이해 김안로가 사사되자 풀려나왔다.

그뒤 수찬교리지평응교 등을 역임하였다. 세자(世子: 뒤에 인종)를 폐위하고 문정왕후의 소생인 경원대군(慶原大君) 환(峘)을 세자에 책봉하려는 모의를 진행함으로써 세자의 외숙인 윤임(尹任)과 알력이 생겨, 1543년에는 윤임일파를 대윤(大尹), 윤원형을 중심으로 한 일파를 소윤(小尹)이라 하여 외척간의 세력다툼이 시작되었다.

이해 성절사(聖節使)명나라에 다녀왔으며, 이듬해 좌부승지좌승지공조참판이 되었는데, 인종이 즉위하자 정권을 장악하게 된 대윤의 송인수(宋麟壽)의 탄핵으로 삭직당하였다.

그러나 인종이 8개월 만에 죽고, 11세의 어린 나이로 명종이 즉위하면서 문정왕후의 수렴청정이 시작되자, 이를 계기로 득세하여 예조참의에 복직되었다. 대윤일파를 숙청하기 위하여 이기(李芑)정순붕(鄭順朋)임백령(林百齡) 등과 함께 음모를 꾸미고, 안으로는 난정(蘭貞)이라는 자기의 첩을 궁중에 들여보내어 대비와 임금의 마음을 놀라게 하였다.

일찍이 이기병조판서가 되려 할 때 유관(柳灌)이 이를 방해하였고, 임백령은 기생첩 때문에 윤임과 서로 다툰 일이 있어 원한을 품었으며, 정순붕은 평소부터 사림들을 미워하여 언제든지 한번 분풀이를 하려고 벼르고 있었다. 이에 그는 이들과 결탁하여 윤임을 제거하는 동시에 유관유인숙(柳仁淑) 등에게까지 화가 미치도록 음모를 꾸몄다. 그 음모의 내용은 “임금(인종)의 병환이 위중할 때에 윤임이 장차 제몸이 보전되지 못할 것을 알고, 임금의 아우(명종)를 추대하는 것을 원하지 않고 계림군(桂林君) 유(留)를 세우려고 하였는데 유관유인숙도 이에 협력하였다.”는 것이었다.

이에 문정왕후윤임유관유인숙 등을 처치하라는 밀지를 예조참의로 있던 그에게 내렸는데, 이는 승정원을 거치지 않아 세인의 의혹을 피할 길이 없고, 또 신하로서의 의리는 자기가 섬기는 분에 대하여 마음을 다하는 것인데 이제 와서 그 당시 대행왕(大行王)에게 충성을 다한 사람에게 심한 죄를 주는 것이 과연 타당하느냐 하는 점과, 왕실외척간의 문제로 왕의 덕에 누가 될 것을 들어 처벌을 반대하는 공론이 일기도 하였다.

그러나 8월 29일 궁중에서 의금부에 전지를 내려 윤임유관유인숙 등을 사사하였다(을사사화). 권력을 장악한 그는 4, 5명의 악한 무리를 심복으로 삼아 평소에 원한 있는 이들을 유배 또는 삭직하여 적대세력을 도태하였다. 을사사화 후 그 공으로 보익공신(保翼功臣) 3등이 되고 이어 위사공신(衛社功臣)2등으로 개봉(改封)되어 서원군(瑞原君)에 봉하여졌다.

위력과 권세가 높아지자 뇌물이 폭주하여, 성내에 집이 열여섯 채요, 남의 노예와 전장을 빼앗은 것은 이루 헤아릴 수 없으며, 살리고 죽이고 주고 빼앗는 것이 다 그의 손에서 나왔다.

또, 아내를 내쫓고 기생첩 난정정경부인에 봉하니, 권력을 탐하는 조신들은 그 첩의 자녀와 혼인을 하였다. 생살(生殺)의 권한을 잡은 지 20년에 사람이 원한을 품고서도 감히 말하지 못하였다.

1546년(명종 1) 형인 윤원로와 권력을 다투었으나 원로가 유배됨으로써 더욱 세력을 굳게 하고, 1547년 양재역벽서(良才驛壁書) 사건을 계기로 대윤의 잔당을 모두 숙청하였다. 이 벽서의 내용은 “여자 임금이 위에서 정권을 잡고 간신 이기 등은 아래에서 권력을 농락하고 있으니, 나라가 망할 것을 서서 기다리는 격이다.......”라는 것으로, 이로 말미암아 봉성군(鳳成君) 완(玩)참판 송인수이조좌랑 이약해(李若海)는 사형되고, 이언적(李彦廸)정자(鄭滋)이염(李㶄)임형수(林亨秀)노수신(盧守愼)정황(丁熿)유희춘(柳希春) 등 잔존 인물을 숙청하였다.

한편, 동지춘추관사로서 『중종실록』『인종실록』 편찬에 참여하였고, 1548년 이조판서가 되었다.

1551년 우의정으로 이조판서를 겸직하고 1557년 영중추부사, 이듬해 다시 우의정이 되었으며, 1560년 서원부원군(瑞原府院君)에 봉하여졌다.

1563년 영의정에 올라 영화를 누리다가 1565년(명종 20) 문정왕후가 죽자 실각하여 관직을 삭탈당하고 전리(田里)로 방귀되었으며, 강음(江陰)에 은거하다가 죽었다.

[참고문헌]

中宗實錄
仁宗實錄
明宗實錄
燃藜室記述
乙巳傳聞錄
昭代紀年

[집필자]

이범직(李範稷)

��� : "������(������)"에 대한 용례

전거용례
歷代總要v04乙丑流普雨普兩以妖僧廣張佛事蠱惑一世被流濟州牧使邊協誅之黜尹元衡元衡以戚屬專擅屢造士禍濁亂朝政至是削黜自殺
國朝編年v07老旣敗受誣諸人悉見召用淑已歿命還告身人莫不憐之上忽降內禪之旨世子固辭乃止○尹任世子之內舅以武進爲贊成尹元衡王妃之弟登第藉楸親之勢雖踐淸顯以爲人之陰毒嗜利見棄於淸議銓卽中書之薦皆見阻礙由是忿嫉士林一時躁進之輩
國朝編年v07乙巳元年以都承旨尹元衡陞拜工曹參判元衡卽大妃之同氣也上卽陞擢蓋以慰慈殿之心也大司憲宋麟壽等論劾踰月竟奪陞資一時有長慮者或憂
國朝編年v08乎云出戶時宋圭菴獜壽怒形於色招而語之曰原吉此議吾所不取也李相未久出爲平安監司時事漸變士林之禍久而不絶尹元衡聽原吉之救引而置諸正卿此乃諸臣徒惑於前日大小尹邪正之說而不知通變而卒取魚肉之禍惜哉梧陰漫錄○自中廟末
國朝編年v09之喪左相柳灌議以燕居若着黑笠是卒哭後卽脫喪也復用白笠仁廟初喪灌等旣死大臣卽廢其議復着黑笠文定王后之喪尹元衡又詆灌議爲非衆懼不敢爭至是復用白笠如禮○時以冬雷領議政李浚慶主論甚力乙巳以來被羅織者抄錄以啓或請放還
國朝編年v09殿乃人君貶已之道人臣豈可輕言乎○弘文館上箚請從兩司伸雪之論竝論削衛社僞勳箚曰在昔中廟末年仁廟在東宮而尹元衡兄弟與尹任搆隙含寃日深於是有大小尹之說識者已知其爲禍胎矣元衡與李芑等潛謀祕計無所不用其極只爲報怨之術
國朝編年v10毒於曩時人心有難誣之理公議獲伸於今日諭予意於中外昭國是如日星在辰巳之兩年痛勛華之繼陟姦人不逞禍心無厭尹元衡以猰㺄之性稔鬼蜮之謀旣憑肺腑之親兼據城社之勢挾私憾於尹任久懷呑噬之志顧所憚者儲宮未施賊害之術嫌成大小
國朝編年v11使憸小之徒盤據要津日肆兇謀臣等實不知聖心之所在也臣等請溯其本而極言之嗚呼東西之說其來已久當初金孝元以尹元衡之門客挾憾於沈義謙之排已釀成不靖之端蓋義謙是外戚之無識者而自附於士類除去權姦因此驟陞遂執國論此國家之
國朝編年v12尹元衡沈通源
國朝彙鑑v1類橫渠襟懷沖曠類康節留守宋㻩欲以其孝行啓聞旌褒敬德詣府庭懇辭得止至是以薦授職亦不就秋九月奪尹任告身罷尹元衡職上召左議政洪彦弼等謂曰兩尹自相朋黨一爲世子一爲大君甚不可也自古人主於外戚厚以待之威以服之此保全之道
國朝彙鑑v1政門上中宗第二子生而穎秀不妄嬉戲明悟善學中宗稱愛之竄左議政柳灌吏曹判書柳仁淑前贊成尹任等尋賜死初任與尹元衡自中宗末年以外戚分朋相傾軋不已時有大少尹之目中宗已憂其漸罷削兩尹以沮抑之然任但無識而已元衡凶狡樂禍故
紀年便攷v10尹任世子內舅也以武進為䝺成尹元衡王妃上之三妃之弟隂毒嗜利見棄清議銓郞中書皆見阻礙由是憤疾士林一時躁進之軰各有所主互相詆誹以尹任為大尹
紀年便攷v10不就敬德硯窮自得類橫渠襟懷冲曠類康節○戶曺參議李名珪奉使如京歸獻幽風七月圖特賜法醖奬之○奪尹任告身罷尹元衡職上名左議政洪彥弼䓁謂曰両尹自相朋黨一為世子一為大君甚不可也遂并罪之○賜書筵官宴于明政殿庭時世子讀畢
紀年便攷v13辛亥生金璫婿字孟容號保菴金安國門人中宗丙子生壯壬午登明經科丙戌以吏佐登重試歴翰林銓郞舎人乙巳明宗即位尹元衡勒錄衛社勳封青川君歸對家人流涕戊申入相至領蜼無學術頗知愛士不與於邪議平居人樂其寬和遇事畏其勁正皆不敢
紀年便攷v13百明同榜别試歴翰林中宗己卯以吏議見斥為全州府尹庚辰免辛巳削明宗即位乙巳拜右相素忿嫉士類思一逞快與■■尹元衡等請對忠順堂殺尹任等一代善流戕害殆盡策偽勳戊申卒年六十五初黨芑和附陰謀人皆囙為元㐫搆殺柳灌後灌婢名甲
紀年便攷v13金安國門人中宗丙子登明經科己卯以吏佐被斥爲外官以能漢語僅容於世明宗即位乙巳参偽勳封鈴平府院君忠順之變尹元衡使漑草啓漑不作以禮判不参賓廳會議或以知禮稱之而附元衡以致相位其餘不足觀也辛亥入相至左賜几杖入耆社丙寅
紀年便攷v13尹元衡
紀年便攷v13尹元衡士昕玄孫坡山府院君謚靖平之任子燕山癸亥生字彥平中宗戊子生員癸巳登别試陰毒嗜利見棄清議銓郞中書皆見阻礙
紀年便攷v13君玉貞妹夫字士容中宗己卯生員丁酉魁别試明宗丙午以直提學登重試辛酉入相至左入耆社素無名望惟以貨賂爲事與尹元衡聲勢相依指金安老為忠讜始擢魁科庸懦無廉隅宣祖即位後自矝乙丑之事於公座曰今日承統我豈無㓛顯有貪㓛之色李
紀年便攷v13生字景由號西山中宗戊子生進俱中甲午登明經科歴翰林南床銓郞舎人爲金安老所忌嘗論斥陳復昌李樑敗而轍代掌銓尹元衡黜而轍旋入相明宗丙寅以御筆拜右相至領致仕賜几杖入耆社歴事四朝立朝四十五年四爲首相 上曰德足以鎭物才足
紀年便攷v13年少白晢有姿容裳欲實前鑑極力吹噓爲弘文正字驟陞華顕明宗戊中入相至左百計鑚剌誣李彥迪權橃以爲功追錄偽勳尹元衡惡之使陳復効之遞相削勳放歸田里 當在此上鄭順朋下文衡
紀年便攷v13安仁子字彥久號滄海又滄洲中宗甲午生員癸卯登明經科歴三司明宗朝選湖堂庚申以文章宰相抄啓選廉謹吏曉音律聽尹元衡嗾殺元老因此發身驟躋宗伯以歸道自䖏浮薄之徒從之講學嘗奬普雨爲吏判門無雜容注擬之際必用淸名之士士類洽然
紀年便攷v13阿苟容之態曾見古今大臣有如此者乎都承旨朴謹元䓁覆逆又下嚴旨貴榮辭遞嘗爲校理時上疏請雪乙巳諸人寃極。論尹元衡罪惡策平難㓛二䓁封上 洛府院君壬辰陷倭削官謫熙川甲午卒于謫所年七十五許積請伸顯宗朝復官子闓見下
紀年便攷v13又東園盧守愼門人 明宗丙午進壯戊申魁别試選湖堂歴銓郞舎人乙卯倭寇為嶺南監軍御史文章與金馹孫朴誾相上下尹元衡譛之竄甲山丁巳卒于謫所年三十四官止典翰以子睟勳贈領相子瞻睟見下
紀年便攷v13學丙寅以直學登重試四歲自知讀書八歲文理大通十行俱下一閱輒記以正言力爭勿還沈貞職牒爲吏郞專事激掦見忤於尹元衡謫漣川及放退居連山若將終身聡明博達有經濟才歴按四道人稱神明爲學蜼無踐履工夫而所見超詣文章鑑識爲一代宗
紀年便攷v13望知其爲偉人長者明宗壬子登明經科歴南床翰林選湖堂歴銓郞舎人副學提學四道伯官止兵判嘗癸宣祖取覧六臣傳尹元衡欲結婚至憑慈旨以啗以嚇終不應元衡遂成憤憾斥爲滿浦僉使宣祖庚辰卒年五中七謚文■(莊)孫承宗見下
紀年便攷v13飽君子道明宗己酉生進俱中戊午登明經科選湖堂歴翰林銓郞舍人典翰直學副學官止大司諫弱冠已名著士林文章擅塲尹元衡忌之認其劵故黜之博通古今精練典故與李■辨四端七情之同異屢千言論議發越學者是之 上問當今學問於李滉滉對
紀年便攷v13謙爲開城留守金孝元爲富寧府使義謙自開城移完伯及還朝無容足地歸卧坡山李潑白惟讓等用事與一時羣賢同罹文綱尹元衡之黜多義謙之力云李珥曰義謙戚里中善類官止参判大司憲襲封青陽 君丁亥卒年五十三兄弟文科弟忠謙見下
紀年便攷v13金世謙彥陽人鎏趙光祖門人己卯隐江陵子生進俱中除参奉明宗即位乙巳疏斥尹元衡謫南海族侄浚見下子瑛以經學薦官止察訪
紀年便攷v13南平縣監登别試仍治任越三年入爲弼善歴三司舎人两銓襲封錦陽君官止判中樞左賛成入耆社長於吏才剖决如流不附尹元衡元衡忌之爲都憲不能救士流清望少减外蜼勤幹內乏淳實士流不與宣祖辛未拜右相被劾還收遂謝病乞骸退歸羅州閉戶
紀年便攷v13此老歸天應復作星辰者卽此也 文定怒下于吏禍將不測鄭磏諫其父曰白某見殺父得罪於萬世順朋救得釋丁未配安邊尹元衡死後牧楊州民歌曰白雪之白與君同白心乎愛矣胡不爲傑宣祖初被擢用言論慷慨不以老白沮除大憲三疏辭下手札曰卿
紀年便攷v13弟運齊名官止参奉弟遇亦有學行薦授参奉與郭珣鄭源李若海等交結泩来皆被罪遇憤怏失聲曰柳懽爲人豈至謀逆竟爲尹元衡所誣以伸救逆賊動搖元勳乙巳被鞫殞於杖下
紀年便攷v13直長克正子承勳再從曾孫燕山戊午生字栗而號獨齋中宗壬午生員乙酉登明經科歴三司銓郞舎人乙巳仁宗昇遐後忤於尹元衡丙午臺啓以為頃與柳仁淑同入銓曹不無謟附削奪官爵被竄歴七年宥還官止戶判 明宗甲子卒年六十七謚恭簡
紀年便攷v13其外玉色口無訾罵疾遽之言心無忤逆忮害之萌望之者恚消忿釋中宗癸酉十三生貟甲申登别試官止大司諫以大諫䟽斥尹元衡辭語甚峻識者憂之明宗即位元衡得志以兵議杖流義州丙午賜死年四十六孫肛見下
紀年便攷v13不言武士姓名癸丑赴京到一驛館人言此舎有妖使臣皆不遇鐸強宿患霍亂從者請移他舎鐸不聽此後邪說始息為副學時尹元衡以妾為妻倡起庶孽許通之論尹春年助成之鐸上劄論之丁卯以禮判待天使容止可觀李浚慶曰風力過人不可及也宣祖辛
紀年便攷v13雖短於學術醇厚有器度且有好善之量故時論歸之但無矯矯風節臨難不能無屈撓謹飭無他而已嘗為大憲也大諫朴淳論尹元衡罪惡請與合啓鐸縮頸曰公欲赤老夫族耶淳徐臂之乃許有一武士私其所畜妾妾本娼也知而即放出終不言武士姓名癸丑
紀年便攷v13歴彥光子彥弼從子 中宗己巳生字太虚辛卯生貟己亥登别試歴典翰舎人直學完畿嶺伯官止吏判選清白吏痛斥陳復昌尹元衡立朝以清簡稱但嫉學問之士及為吏判與佐郞鄭澈相忤宣祖丙子卒年六十六謚貞孝子宗祿見下曾孫振道蔭同敦憙子具
紀年便攷v13金安國門人中宗庚子以進士登明經科歴舎人官止二相選清白吏入耆社 上賜宴優賞蠟燭還家。以憲長論斥李芑又論尹元衡賣官鬻爵事善為詩詩入東文選年七十八卒
紀年便攷v13局印出郞官欲私印吏曹正郞柳堪曰曹中紙不敷豈必印出乎佐郞韓智源告芑曰堪以此書不足觀也堪禀性嚴毅外坦內確尹元衡倡起邪說不欲禮祔 仁宗於 太廟堪抗直争辨事歸於正當路猜恨至己酉因臺啓拿杖安置于慶源過十七年乙丑元衡黜
紀年便攷v14鄭淡允謙庶子號勿齋能文章登文科深觧易理同胞妹蘭貞為尹元衡之妾淡預知為禍祟未甞往來雖不顯加拒絶蘭貞亦不得往見及元衡敗淡免連累
紀年便攷v14黨附尹元衡諸人
紀年便攷v14領議政李浚慶䓁廷請尹元衡李芑林百齡鄭順朋軰僞勲之号并削仍請伸雪柳灌柳仁淑叛逆之名閱數月後始有是命削勲事不允
紀年便攷v14先是義謙以舍人因公徃領相尹元衡家尹婿李肇敏與義謙相知引入書室見進士金孝元寢具在其室心鄙之及孝元登第律身清苦朝士争推奬吳健欲薦孝元為
東國歷代總目v02疾篤下遺敎曰趙光祖事予未嘗忘于心今予疾至此其復光祖爵上昇遐諡曰榮靖葬孝陵在高陽無嗣慶原大君以遺命卽位尹元衡等誣殺尹任柳灌柳仁淑等○元衡文定王妃之弟也爲人奸邪雖踐華要見棄淸議常憤嫉士林至是誣告任等謀危宗社任等
東國歷代總目v02卒○彦迪字復古號晦齋慶州人中宗朝登第爲諫官力斥金安老被劾罷歸安老敗死復召用及尹任等獄事作彦迪抗辭力救尹元衡劾之安置江界至是卒於謫所年六十三宣祖朝贈領議政諡文元
東國歷代總目v02仍削尹元衡等僞勳
記聞v1卽位二十二年昇遐壽三十四○賜尹任等死錄鄭順朋等衛社功臣宣廟丁丑削勳○相李芑鄭順朋沈連源黃憲尙震尹元衡尹漑安玹李浚慶沈通源李蓂權轍○配享領相忠惠公沈連源左贊成文元公李彦迪○主文鄭士龍湖陰洪暹忍齋鄭惟吉林
記聞v1中宗初葬高陽與禧陵同塋明宗壬戌尹元衡力賛文定王后遷于漢濱卑湫之地人皆憤惋而莫敢發言世傳遷陵時哭聲自壙中出役者無不聞之翌年順懷世子卒越
記聞v1南廡避殿減膳祭告于宗廟癸丑春已移御于昌德宮命右相尹漑禮判鄭士龍等爲提調以營東宮至是又命領相沈連源贊成尹元衡等爲提調監繕大內舍人朴民獻復欽敬閣甲寅夏欽敬閣東宮思政殿丕顯閣交泰殿延生殿慶生殿養心堂紫薇堂康寧殿次
大東彙纂v1順懷世子當行嘉禮尹元衡以其女壻安德大之切族黃大任女子苻同卜人旣裝五柱以爲最吉納之親迎之期只隔旬日大任之女忽患腹痛甚重
大東彙纂v1尹任乃仁宗之舅也以武人在中廟朝階崇政尹元衡卽文定王后之弟也爲人奸邪銓郞中書之薦皆不得參一時躁進之輩各有所主遂有大小尹之說中宗己亥東宮有火災藉藉
國朝捷錄v01判書甫子籍坡平辛亥六月七日誕降乙亥三月二日昇遐初葬廣州中宗三十二年移于高陽禧陵三十里艮坐生一男一女○尹元衡文定王后弟也與仁廟舅任有源金安老用事以保護東宮爲名欲以傾中宮乃奏放元衡及其弟兄元老于外大小尹之說自此
國朝捷錄v01字商卿號 海平人與謹思安老啓請竄尹元衡兄弟乙未拜領靖成公僉正萱子戊子生
國朝捷錄v01一等四人鄭順朋之陰譎李芑之不測林百齡之邪毒許磁謫安邊尹元衡之凶惡時謂五奸幷首謀起禍其餘二十五人不錄金明胤之奸黠其餘陳復昌具思顔宋世珩崔輔漢崔殷浩之徒滔滔皆是
湖南節義錄v1科拜持平少學于丁舍人熿修鄕學立家塾爲士林所宗處臺閣彈劾不避累典州郡興學著績乙丑與朴進士揆合議抗章極論尹元衡之罪甲戌爲雲峯縣監建白于朝立太祖大王荒山大捷碑庚辰以聖節使書狀赴京求得晦菴東萊兩先生眞像以歸月朔展敬
靑邱風雲v1號晦齋字復古爲諫官議金安老罷歸及尹任獄事公抗辭力諫尹元衡劾之謫江界
靑邱風雲v1長不啻萬變而邪正忠逆之分始微而終著國朝數百年來其已然之故歷歷可按而知也粤在明廟朝沈義謙以舍人稟事尹元衡見金孝元寢具在其甥室心鄙之及宣廟朝孝元釋褐有盛名吳健力薦銓郞則義謙執前事不許少輩譁然指義謙
韓史綮v1甲辰三十九年明世宗嘉靖二十三年時贊成尹任與尹元衡元老兄弟分朋相傾時人謂之大小尹王聞恐爲後患春奪任告身元衡罷職○冬十一月王薨世子峼卽位命國家機務一
韓史綮v1尹元老在中宗時造言離間兩宮罪當死命竄元老于海南兩宮謂仁宗及王也秋八月以仁宗遺命復賢良科時尹元衡得勢欲殺尹任與李芑鄭順朋林百齡陳復昌等謀乃先僞作尹任上仁宗妃之書爲若怨望朝廷者故委之於文定后
韓史綮v1九月命削左贊成李彦迪官爵初彦迪於尹任之獄欲救士流從容依違於尹元衡李芑之間于是元衡等知彦迪異已怒而讒之○時檢閱安名世直書尹任獄事于史李芑見之大怒以爲名世護逆白王
韓史綮v1赦之春二月乃與日本修定條約○時有人於良才驛壁匿名揭書有女主執政國將亡之語秋九月副提學鄭彦慤得而進之尹元衡以爲是尹任餘黨所爲使領議政尹仁鏡及李芑等曰王將尹任獄覆獻於是宋麟壽李若氷林亨秀中宗子鳳城君
韓史綮v1普雨言立兩宗以靖陵奉恩寺爲禪宗光陵奉先寺爲敎宗左議政沈連源率百官庭爭日奈何興異端以累聖德乎不納○以尹元衡爲領議政
韓史綮v1辛亥六年明世宗嘉靖三十年陳復昌死復昌爲尹元衡等鷹犬賊害無辜不可勝數時人嫉之目爲毒蛇旣而亦爲元衡所惡竄于三水于時死於竄所
韓史綮v1文館副修撰金麟厚卒初仁宗之疾劇也麟厚自玉果上疏請預內醫院同議藥且言上難於定省宜暫離東朝以便調養尹元衡等大噪謂麟厚間上母子及仁宗薨麟厚解印歸鄕屢除拜皆不應每遇仁宗忌日持畫竹扇入山中慟哭而返
韓史綮v1四年夏四月文定王后薨葬泰陵○六月流僧普雨于濟州初王惡普雨而恐傷母后之心不敢發至是始斥之○王惡尹元衡之爲人思欲斥之秋八月於經筵問漢文帝殺薄昭事群臣知其意疏劾元衡王乃削其職放歸田里數月元衡懼誅飮
韓史綮v1亥八年明神宗萬曆三年冬十月出吏曹佐郞金孝元爲三陟府使外戚沈義謙爲開城留守初孝元幼少時有才名與尹元衡之子同讀書義謙見而薄之曰何此子之附權奸哉其後孝元登第頗自持淸苦當官擧職朝鮮故例吏曹注擬佐郞主可否
東國續修文獻錄v1庵澮曾孫文領相忠惠尙震字起夫號泛虛亭木川人文領相有相業成安尹漑字汝沃號晦齋坡平人文左相几杖尹元衡字彥平士昕玄孫文領相乙巳戕害士類被黜安玹字仲珍號雪江順興人文左相文僖李浚慶字原吉號東皐仁孫
國朝人物志v1及文集行于世官至左贊成諡文敬配食仁宗廟廷子汝孚字基福進士文科典翰以尹元衡黨見廢國朝榜目
國朝人物志v1科壯元入湖堂所對十漸策皆切時病人多傳誦曰金弘度文章與金馹孫朴誾相上下而周博過之與尹元衡有隙以典翰謫于甲山而卒元衡敗遂復官以子之貴贈領相有三子瞻文科校理睟文科
國朝人物志v1明宗丁未堂兄圭菴公遘禍芑黨至欲竄公母夫人廢寢食憂之公引范滂事爲解己未上厭尹元衡所爲擢士流置臺閣公其一也明宗違豫公力贊李相浚慶定國本及宣祖將纘大統諸卿雜議儀節
國朝人物志v1方伯甚重之咨詢之時幷馬同行値溪林之勝輒停車酬酌不知日力之晚也乙巳大禍之後陳復昌附權奸尹元衡拔自微賤致位宰列外托敢諫明宗至以朱雲汲黯稱之復昌張甚以私怨殺掌令鄭希登擧
國朝人物志v1子長全義人監役侃子壬午進士壬辰文科參議爲文章華問彌大在臺省激濁揚淸擧劾無所避嘗劾尹元衡被其中傷外補爲鏡城下車旋授平壤庶尹屢遷淮陽朔州原州義州星州皆有赫赫聲平壤
國朝人物志v2乙巳阿附鄭順朋搆出鳳城君獄事網打善類鳳城乃洪景舟妹淑嬪洪氏出也錄僞勳封君後以尹元衡腹心追削國朝榜目及薦擧科罷明胤還着儒巾入場屋登第不顧是非惟以發身爲急乙巳之難希權奸旨
國朝人物志v2中宗壬午生員庚子文科乙巳以獻納被禍竟卒于獄中國朝榜目嘗言外戚不當與政李芑與尹元衡銜之人物考子師聖文科正師聖子序字倫伯己酉進士己卯文科公州牧使壬辰
國朝人物志v2所以進賢去邪除弊去滯數月之間大更政化皆贊而成之朝野想望風采仁宗賓天明廟幼沖嗣位尹元衡將逞宿憾於尹任乙巳八月李芑等入對忠順堂請尹任罪以灌稍存形跡始請遞相未數日付
國朝人物志v2是拿鞫無實億齊被反坐律仁淑因辭病免寓居文義黃岡村辛巳秋奪告身杜門屛跡十七年時尹元衡與尹任有隙一時躁進之輩各有所主互相詆排自中宗末年已有大小尹之說戊戌上忽降內禪之命
國朝人物志v2鶻擊不可爲罪處置於是兩司皆遞希登獨出仕撤去復昌坐席焚之曰士君子不可坐奸人坐席聞者肅然尹元衡作祕簡授崔彥浩袖傳于希登使致殷勤之意欲與同事希登拒不受曰彥平通書不過欲我同
國朝人物志v2吾當力論密旨之非及兩司會中學贊成閔齊仁極力勸行希奎曰我則雖寸剉吾骨而碎之有不從也因曰尹元衡以國元舅主張國論不能引君於義反內陰屬國毋戕害忠良可乎今日必先去此人然後國是可定矣金䃴朴
國朝人物志v2丁酉文科爲檢閱辛丑爲養親乞外除南平縣監居四年以治行第一陞一資乙巳文定王后降密旨于尹元衡使除去尹柳三人兩司長官從風而靡將會議先使許磁諭旨于仁傑拒之不從磁怒曰知子有老
國朝人物志v2誅召拜禮曹參議陞吏曹參判黜爲全羅監司仁宗朝奉使如明及還道拜大司憲彈去尹元衡乙巳明宗卽位文定王后御忠順堂大行刑戮指爲浮薄徒領袖而斥逐之麟壽遂歸淸州
國朝人物志v2濟州牧未幾罷還丁未壁書之變被竄絶島安置鄭彥愨獨啓曰亨秀與尹任同里閈爲爪牙心腹每曰尹元衡當殺其與任同心可知也只爲竄謫似歇大妃褒之曰良才壁書見者非一人而爾獨來啓林亨秀罪同罰異
國朝人物志v2也涪溪記聞潔與思顏友善一日赴其家仍乘醉語曰乙巳之人豈無橫冤有一人預聞漏其言於尹元衡思顏懼其及己先告之使潔陷死鵝城雜記
國朝人物志v2時弊南冥曺植往見力止之不果上著壯行通考負暄錄各十卷庚申卒于謪謫年四十九獄禍方嚴尹元衡欲其脫於禍網令所厚尹春年力勸公見已反覆以禍福爲言公終不聽其在謪謫中亦托私人之往來者以覘
國朝人物志v2籤世龜娶府尹陽川許礦女生堪中宗丁酉生員進士庚子文科修撰乙巳以舍人見尹元衡殺諸賢新撰武定寶鑑刊行而堪不爲押印以此見忤被謫慶興十七年昭代記年弟塤字
國朝人物志v2爲戶曹佐郞精於會計判書申公濟語人曰他日判書已在吾郞中丙午擢拜戶曹判書忤尹元衡謫平海辛亥以國慶量移楊州壬子因母夫人上書乞恩命放還甲子卒諡恭簡人物考
國朝人物志v2癸卯生員丙午文科歷三司銓郞官至典翰與金繼輝金弘度志同道合士流倚重金汝孚附尹元衡欲爲舍人謂虬曰母病將死願爲舍人以濟喪事因涕泣以示急切之狀而歸輒宿於倡家虬與
國朝人物志v2磁錄一等勳洪彥弼尹仁鏡李彥迪權橃丁玉亨申光漢尹漑閔齊仁金光準錄二等勳尹元衡宋麒壽宋世珩崔演李文楗李潤慶崔彥浩林九齡尹敬仁韓景祿錄三等勳而世稱元衡
國朝人物志v2人龔太史之來也望見磁曰彼秀而頎者爲誰莫是蹈瑕釁而落拓者耶安老敗召還明宗乙巳附尹元衡雖與鄭順朋同事而至加以叛逆魚肉士林非其本心故論柳灌等之時其謀危宗社爲罪名過重厥後每有
國朝人物志v2中宗辛卯進士乙未壯元文科大司憲復昌巧黠自衒如具壽聃輩亦爲所瞞爲之延譽汲汲引進尹元衡專國復昌遂附爲其鷹犬元衡所欲害者卽爲擊去屢起大獄一時名流死者極多時人目以毒蛇見者側
國朝人物志v2璞安世亨尹忠元安馠中道付處彥愨又獨啓曰林亨秀與尹任同里閈如爪牙心腹每曰尹元衡當殺大言於稠人廣坐中其與任同心尤可知矣只爲竄謫似輕歇慈殿褒之曰良才壁書行人見者非一而爾
國朝人物志v2滿內授禮曹參議己亥春奉使如明還爲慶尙監司遞拜大司憲乙巳由戶曹參判擢拜判書尹元衡勒書僞勳以衛社功封靑川君連源對家人流涕戊申拜右相進拜府院君己酉秋陞左相庚戌
國朝人物志v2相引年致仕賜几杖明宗命錄啓乙巳被罪人廷議不一或欲分等其罪名以啓蓂力爭曰此罪名乃賊臣李芑尹元衡等所成今若分等是實其罪也丙寅陞左議政卒年七十七諡貞簡人物考
國朝人物志v2中宗問曰權轍見貶何罪安老誅後敍用復入史館上每於文義可疑輒以咨詢明宗丙寅尹元衡以罪黜上親以御筆特晉拜右相宣祖戊寅拜領議政命肩輿入朝三爲首揆每於朝謁使黃門扶腋
國朝人物志v2親至孝天經地緯無不通曉仁宗朝以遺逸薦上注意曰白衣宰相也會賓天未果明宗朝爲司評尹元衡擅國棄官而去結廬丹陽龜潭上修養精神所居光明生室常跨靑牛縱游江上一日積雪滿山登玉筍峯玩賞
國朝人物志v2字汝晦坡平人倬子武科水使性廉謹以故所至有聲績尹元衡鴟張甚大先智與連袂絶不通問元衡銜之多所挫抑然先智淸操素著卒未有以傷之人物考
國朝人物志v2昌用事嫉公異己嘗欲傾陷公不爲動至作詩以刺之再長憲府也會有林百齡議諡事淸流處館職者皆將得罪尹元衡謂公常右乙巳黨人啓請幷罪之事且不測明廟燭其狀公免焉然元衡怒不解上爲出公按嶺北
國朝人物志v2字謹叔淸州人郡守汝弼子丁卯生員庚午文科補檢閱官至判官尹元衡爲子請婚不得則脅以勢力公遯入山寺經年不返人皆爲公危之公不少撓庚辰卒年四十五以季男國舅西
國朝人物志v2字思可號逗日堂泗川人玄軒世秤子丙午文科丙辰重試參判入耆社出按湖西尹元衡囑以私事不應遂被搆遞職辛卯耆老所請曰宋贊睦詹俱以先朝宿德耆臣年至已久雖在從二品破格令入爲宜
國朝人物志v2中宗癸卯進士壬子文科薦入翰苑其在銓曹所進僚席者如盧禛等賢士而至於戚里新倖嗜進者則不許郞薦尹元衡欲結婚至憑慈旨以啗以嚇而堅執不應二憾竝搆遂出鎭滿浦癸亥國家更化召爲大司諫治其餘黨務從寬
國朝人物志v2歲試都會才名藉藉己酉文科壯元歷湖堂玉堂吏郞與金弘度金虯等專事激揚失志之徒切齒遂與尹元衡謀起士獄繼輝退居連山乞郡爲安東府使歷舍人典翰直提學丙寅中重試陞通政爲黃
國朝人物志v2上封事十條語皆切實公有先事之見有鯨過漢漁人得之公聞曰自海而江是行魚也行魚就誅尹其不免乎翌年尹元衡果敗嘗曰數十歲後國必多難乃涉獵兵書若將戡亂雖先溘然語則驗矣壬申以學行醇正授參奉赴謝卽歸卒
國朝人物志v2翰苑春坊外知州府者五爲金海府使創立南冥先生新山書院于山海亭舊址嘗上書劾尹元衡南冥致書稱奬府使河死於己卯禍久未伸公又論雪人皆歎服同上大司諫魚得江外孫
國朝人物志v2欲究性命之源探孔顏之樂悠悠風塵日暮道遠豈非命耶慕齋金安國曰非世儒所及乙巳士類論斥尹元衡箕以持服在外免禍宣祖丁卯拜右相至左議政慕齋門人諡文景
國朝人物志v2終日相對無言只以杯酒戲謔復昌語人曰此人佯狂外我爲大司憲與大司諫朴淳論劾李芑貪縱尹元衡罪惡宣祖辛未拜右相至領議政諡貞肅相臣錄爲直提學時李樑得志鐸獨不附時
國朝人物志v2字景老號思庵東萊人荃子辛卯生員中宗壬辰文科壯元爲承旨時有旨封尹元衡妾爲夫人夫年憤而故遲之同僚伺其無而行之及按西藩西倅有以船賂元衡元衡托護於大年
國朝人物志v2子八歲開口詠物輒驚人十八進士受學於花潭徐敬德癸丑文科壯元歷校理爲大司諫與李鐸劾尹元衡入室更衣坦坦而出家人不知有事及歸幼女出迎淳執手笑曰幾不得復見汝淳慨然曰劾冀誅憲挽回世道
國朝人物志v2快李珥謂朴淳曰惟吉雖有疵累有才華風度勝於時輩所推者矣石潭日記八踐銓司九典邦禮尹元衡爲子求婚峻却不納宣祖辛巳拜右相被劾改正癸未更卜至左議政平生處事不露圭角年七十入耆
國朝人物志v2學遲腹飢猶閟況心飢家貧嘗有療心藥須待靈臺月出時土亭益奇之戊午進士庚申文科選入湖堂箚劾尹元衡辛巳爲吏曹判書辭以病李珥曰受國厚恩當此國勢弧危宜盡職以報君何爲引疾以孤士望山海感其
國朝人物志v2字景瞻延安人文康公石亨曾孫己酉進士金虬居臺閣專事激濁尹元衡乘時起獄虬下理受栲公日詣獄手傅藥治之公率多士請褒贈己卯諸賢上許之官至縣令贈領議政
國朝人物志v2字仲薰號四留齋慶州人獻納箴曾孫明宗辛酉進士文科選入史局尹元衡居比隣要相見終不肯又知鄭汝立凶悖擧世推許而獨痛絶之坐是枳於仕路出補延安府使朝廷以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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