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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仁宗){2}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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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異名)이호(李峼)
자(字)천윤(天胤)
시호(諡號)헌문의무장숙흠효(獻文懿武章肅欽孝)
생년1515(중종 10)
졸년1545(인종 1)
시대조선전기
본관전주(全州)
활동분야왕실 > 왕
장경왕후(章敬王后)
인성왕후(仁聖王后)
처부박용(朴墉)
외조부윤여필(尹汝弼)
묘소경기도 고양시

[상세내용]

인종(仁宗)
1515년(중종 10)∼1545년(인종 1). 조선 제12대왕. 재위 1545년. 본관은 전주(全州). 이름은 이호(李峼). 자는 천윤(天胤).

중종의 맏아들로 모친은 영돈녕부사 윤여필(尹汝弼)의 딸 장경왕후(章敬王后)이며, 비는 첨지중추부사 박용(朴墉)의 딸 인성왕후(仁聖王后)이다.

1520년(중종 15) 세자로 책봉되어 25년간 세자의 자리에 있다가 1544년 즉위하여, 이듬해 기묘사화로 파방된 현량과(賢良科)를 복구하고, 조광조(趙光祖) 등의 기묘명현을 신원해주었다. 성품이 조용하고 욕심이 적었으며, 어버이에 대한 효심이 깊고 형제간의 우애가 돈독하였다.

특히, 학문을 사랑하여 3세 때부터 글을 읽기 시작하였다.

1522년에 관례(冠禮)를 행하고 성균관에 들어가 매일 세 차례씩 글을 읽었다. 동궁으로 있을 당시에는 화려한 옷을 입은 시녀를 궁 밖으로 내쫓을 만큼 검약한 생활을 하였다. 형제간의 우애가 돈독하여 누이 효혜공주(孝惠公主)가 어려서 죽자 이를 긍휼히 여겨 그로 인하여 병을 얻었으며, 서형(庶兄)인 복성군(福城君) 미(嵋)가 그의 어머니인 박빈(朴嬪)의 교만으로 인하여 모자가 귀양을 가게 되었을 때에 이를 석방할 것을 간절히 원하는 소를 올려 중종도 그의 우애 깊음에 감복하여 복성군의 작위를 다시 주었다 한다.

중종의 병환이 위독하게 되자 반드시 먼저 약의 맛을 보았으며, 손수 잠자리를 살폈고, 부왕의 병환이 더욱 위중하자 침식을 잊고 간병에 더욱 정성을 다하였다. 병환이 위독하여짐에 따라 1545년(인종 1)에 대신 윤인경(尹仁鏡)을 불러 경원대군(慶源大君: 뒤의 明宗)에게 전위하고 경복궁 정침(正寢)에서 31세로 죽었다.

시호는 헌문의무장숙흠효(獻文懿武章肅欽孝), 묘호(廟號)는 인종이며, 능은 효릉孝陵)으로 경기도 고양시에 있다.

[참고문헌]

中宗實錄
仁宗實錄
璿源系譜

[집필자]

유승주(柳承宙)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