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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崔演)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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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연지(演之)
호(號)간재(艮齋)
시호(諡號)문양(文襄)
생년1500(연산군 6)
졸년1549(명종 4)
시대조선전기
본관강릉(江陵)
활동분야문신 > 문신
최세건(崔世楗)
외조부김세량(金世良)
공신호위사공신(衛社功臣)

[상세내용]

최연(崔演)
1500년(연산군 6)∼1549년(명종 4).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江陵). 자는 연지(演之), 호는 간재(艮齋).

부친은 증이조판서 최세건(崔世楗)이며, 모친은 김세량(金世良)의 딸이다.

1519년(중종 14) 사마시를 거쳐 1525년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예문관검열이 되고, 이어 저작에 올랐다가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하고 설서사서를 거쳐 1531년에 김안로(金安老)의 전횡을 고변하고 홍문관수찬에 올랐다. 이어 정언지제교를 거쳐 병조좌랑에 전임되었을 때 대간으로부터 여러 차례 탐관이라는 탄핵을 받았으나 왕의 신임이 깊어 유임되었다.

1637년 장령이 되었고 이듬해에는 문장이 능하다고 하여 명나라 사신을 맞는 원접사(遠接使)종사관으로 활약하였다. 이해에 전국적으로 흉년이 들자 충청도어사가 되어 농민을 위무하였다.

다시 조정에 들어와서 장례원판결사를 거쳐 부제학대사간동부승지좌승지 등을 역임하고 1545년(명종 즉위) 도승지에 올랐다. 이해에 을사사화가 일어나자 이기(李芑)임백령(林百齡) 등 소윤에 가담하여 위사공신(衛社功臣) 3등에 책록되고 동원군(東原君)에 봉해졌으며 가의대부에 올랐다.

이어 도승지경연참찬관을 겸임하였고, 1546년 이조참판에 보임되고, 한성부좌윤을 거쳐 병조참판을 역임하였는데, 그동안 승문원 소속의 노비 2구를 점탈하였다고 하여 대간의 탄핵을 받기도 하였다.

이듬해 병조판서에 승진하였고, 곧 한성부판윤으로 전임되어, 『무정보감(武定寶鑑)』을 편찬하였다.

1548년 지중추부사겸지의금부사(兼知義禁府事)를 거쳐, 이듬해 동지사(冬至使)명나라에 가던 중 평양에 이르러 병사하였다.

시문에 능하여 국가에서 주관하는 교서‧책문을 주로 담당하였고, 어제시(御製詩)에 항상 수석 또는 차석을 차지하여 왕의 총애를 받았다. 좌찬성 겸 대제학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문양(文襄)이다.

[참고문헌]

中宗實錄
明宗實錄
國朝榜目
國朝人物考
燃藜室記述

[집필자]

최완기(崔完基)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2010-06-07명종실록 9권, 1549년 2월 4일 졸기 기사를 참고하여 졸년 1546을 1549(명종 4)로 고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