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치검색 표제어 전체
검색
경혼(慶渾)

[요약정보]

UCIG002+AKS-KHF_12ACBDD63CFFFFB1498X0
자(字)언회(彦晦)
생년1498(연산군 4)
졸년1568(선조 1)
시대조선전기
본관청주(淸州)
활동분야문신 > 문신
경세청(慶世淸)
상주김씨(尙州金氏)
외조부김양완(金良琬)

[상세내용]

경혼(慶渾)
1498년(연산군 4)∼1568년(선조 1).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언회(彦晦).

고려 시중(侍中) 경정렬(慶貞烈)의 7세손으로, 부친은 지평 경세청(慶世淸)이며, 모친은 상주김씨(尙州金氏)김양완(金良琬)의 딸이다.

김안국(金安國)의 문인으로, 1522년(중종 17) 진사가 되고, 1533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검열이 되었다가 1543년 장령헌납직강을 거쳐 이듬해 사간원사간으로서 기묘사화로 화를 입은 조광조(趙光租) 등의 신원(伸寃)을 청하였다.

그뒤 시강원우필선사헌부집의승문원판교를 역임하였으며, 홍문관직제학으로서 춘추관편수관을 겸하여 『중종실록』 편찬에 참여하였다.

1547년(명종 2) 병조참지, 이듬해 대사간이 되었고, 병조참의를 거쳐 홍문관부제학이 되었다.

1551년 문정왕후(文定王后)가 승려 보우(普雨)를 중용하고 선교양종(禪敎兩宗)의 선과(禪科)를 설치하려 하자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고, 기신재(忌晨齋)의 시행도 극력 반대하였다.

그뒤 충청도관찰사를 거쳐 예조이조호조병조참의를 역임한 뒤 좌부승지가 되었으나, 노쇠하여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는 대간의 탄핵으로 체직되었다.

1561년 장례원판결사로 다시 기용되었으나 곧 체직당하였으며, 오위장을 거쳐 70세로 죽었다. 그는 4조(四朝)에 걸쳐 벼슬하였으며, 언관(言官)으로서 활발한 언론활동을 전개하였다.

[참고문헌]

中宗實錄
仁宗實錄
明宗實錄
國朝人物考
國朝榜目

[집필자]

이병휴(李秉烋)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